한 교수가 "금일 자정 이후로 과제물을 제출하는 학생은 과제점수가 감점되니 서둘러 제출하라"는 공지를 수업 단체채팅방에 올렸다. 그러자 한 학생은 "금요일 자정까지 아니었느냐"며 "금일 자정까지라고 해서 금요일 자정까지로 알고 있었다"고 질문했다. 그러자 "금일(今日)은 금요일(金曜日)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뜻"이라고 교수가 알려주자, 그 학생은 "학생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이 사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유머게시판 등에서 화제가 됐다.
문해력 저하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신 문맹' 시대가 왔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교육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각한 교육현장 상황
문해력의 저하는 실제 교육현장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특히 각 대학에서 교양수업으로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고 있음에도 교수들은 학생들의 문해력이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가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긴 글 읽기'에서 드러난다는 게 교육 현장 교수들의 지적이다.
양진오 대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예전 강의에는 학생들이 다 이해했던 표현들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다'며 질문이 들어오는 경우가 늘었다"며 "글의 구조가 복잡하거나 독자로 하여금 판단을 요구하는 글에서는 미리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향은 글쓰기 과정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문맥에 맞지 않는 어휘를 선택한다거나 내용을 요약 또는 발췌해 정리하는 걸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글을 쓰거나 발표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은 강하게 주장하는 반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대라고 하면 머뭇거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경북대에서 글쓰기를 지도하는 홍미주 초빙교수는 "과제를 평가하면서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어휘력이 부족해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글' 자체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 또한 자신들의 문해력이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보다 높지 않음을 피부로 느낄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
계명대 대학생 강동민(23) 씨는 "평소 부모님과 사회 현상 등의 문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른들이 갖고 있는 배경지식이나 어휘를 따라잡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며 "그래서 신문 등을 같이 읽고 이야기를 하면 그나마 이야기가 통하는 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북대신문에 문해력 관련 기획을 취재한 김홍영(20·경영학부) 기자는 "취재하면서 들은 이야기 대부분이 수능 이후에 긴 글을 읽을 일이 없던 탓에 전공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너무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젊은 세대들은 '긴 글'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 기자는 "유튜브 등을 보면 긴 호흡의 책이나 영화를 요약해 주는 콘텐츠들이 많다 보니 이에 익숙해지면서 '읽음'에 대한 동기가 사라지고, 그것이 자신이 필수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긴 글'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전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디지털·영상 위주 세상일수록 문해력은 더 중요"
젊은 세대와 젊은 세대를 가르치는 사람 모두 최근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저하된 원인으로 '디지털과 영상 위주로 정보를 전달하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가장 많이 꼽았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대부분의 소통이 활자 매체나 긴 글이 아닌 사진·영상 매체나 짧은 글로 대체되면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홍미주 경북대 초빙교수는 "SNS는 일상적 어휘를 사용하는 공간이고 글의 길이도 길지 않기 때문에 사고의 결과를 글로 풀어쓰는 경험을 하기 힘들다"며 "젊은 세대의 경우 영상으로 지식을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고력을 요하는 긴 글을 읽어본 경험이 부족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영상과 이미지가 문자와 활자를 대체해 가는 세상임에도 문해력은 그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활자 위주 시대보다 더 많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찾고 그것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하기 위해서는 문해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는 "아무리 AI시대가 등장하고 4차산업시대가 도래했다 해도 인간의 빛나는 재능 중 하나는 어떤 상황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이성적, 감성적 능력"이라며 "이 능력을 키우려면 글에 대한 자신의 해석, 독법이 굉장히 중요한데 결국 문해력 향상로 귀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 해결책은 '꾸준히 읽고 생각 나누기'
젊은 세대의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결국 '읽기'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흘'이 3일인지 4일인지를 두고 네티즌들이 벌였던 논쟁,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무운' 발언을 두고 일어났던 기자의 오해도 따지고 보면 맥락을 꼼꼼히 살피는 노력만 들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는 "대학 내 글쓰기 강의나 교양 강의 등으로 문해력을 키울 수 있기는 하지만 15주가량 되는 한 학기 분량만의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일단 긴 글을 읽고 꾸준히 토론하는 학습 환경이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생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직되는 독서 모임도 자신의 저하된 문해력의 향상을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대구대 내 독서모임 '봄다봄'의 회원인 권서연(22·국제관계학과) 씨는 "독서 토론을 통해 서로 생각들을 공유하면서 간접 경험이 가능해졌고, 이런 경험들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접하게 됐다"며 "많이 읽고 토론함으로써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적어지면서 사고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 또한 젊은 세대의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데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김홍영 경북대신문 기자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방식이 글에 대해 너무 파편적으로 접근하게 만들고 해석을 고정시키는 단점이 있다"며 "글을 읽고 난 뒤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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