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낯선 이름인 이수민은 순조시대 화원화가다. 할아버지 이성린에서부터 6대에 걸쳐 총 16명의 도화서 화원을 배출한 가문이다. 아버지 이종현, 형 이윤민도 유명한 화원이고, 삼촌도 화원이며 자신의 두 아들도 화원이다. 최고의 그림 실력자들이 뽑히는 도화서이니 대단한 화가 집안이다.
이수민의 공식 이력은 순조와 순원왕후의 결혼식을 기록으로 남긴 1802년 가례도감의궤에서부터 시작된다. 약관의 나이에 벌써 국가적인 공식 기록물의 실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온통 화가인 가족들 사이에서 자라며 할아버지 때부터 축적된 경험을 가전(家傳)의 비결로 전수받았을 터이다.
이수민은 이로부터 10여 년 후 차비대령화원으로 선발된다. 차비대령화원은 정조가 새로 만든 궁중화원제도로 왕과 관련되는 도화(圖畵) 활동을 담당한 국왕 직속의 화원이다. 도화서 화원을 대상으로 한 정기적인 녹취재 시험을 통해 뽑았다. 규장각 소속으로 궐내에서 근무하며 왕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이들에게는 도화서의 일반 화원들과 차별되는 여러 특전이 주어졌다.
이수민은 차비대령화원을 지내며 총 11회 의궤도감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왕실행사의 행렬 순서를 그림으로 기록한 반차도(班次圖), 능원의 석물을 스케치하는 석물기화(石物起畵), 지도와 건물도, 왕이 생산한 어제어필이나 왕실 문서와 관련한 인찰(印札) 등 크고 작은 일들을 담당했다. 1830년 순조의 어진을 그릴 때는 동참화사였다.
이수민은 궁중기록화, 산수인물화, 도석인물화, 화조화, 아회도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다 잘 그렸으나 그의 이름으로 전하는 작품은 30여 점뿐이다. 화원화가들의 주요 업무는 감상화 창작과 거리가 있었다.
'하일주연도'는 깔끔하고 섬세한 필치 속에 은근한 시정(詩情)이 감돈다.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백의 처리가 인상적이다. 얼핏 하늘처럼 보이지만 하늘이 아니라 잡풀이 잔잔하게 솟아있는 땅이다. 집의 배경으로 멀리 산과 하늘이 그려지는 보통의 예와 달리 텅 빈 들판의 모호한 공간감이 신비한 분위기를 준다.
왼쪽 위에 '기묘하일(己卯夏日) 초원(蕉園)'으로 서명해 1819년 어느 여름날 작품이다. '파초 정원'이라는 초원은 이수민의 호이다. 장대한 여름 파초가 거대한 괴석과 함께 담장 위로 훌쩍 솟았다. 집 안에는 조그맣게 그려졌지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세 인물이 탁자를 가운데 두고 의자에 앉아있다. 인물의 옷차림과 입식 탁자는 중국풍인데 기와집과 모정(茅亭)은 조선식이다. 절병통을 얹어 장식한 초가지붕 정자가 본채보다 웅장한 것은 무슨 뜻이 있어서일까?
녹음이 우거진 가운데 낙락장송 한 그루가 우아한 격조를 더한다. 대구에서도 곳곳에 파초가 무성한 계절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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