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의 반짝임이 가득한 현대 도시 속, 문득 마주한 빛에 순간적으로 눈을 찌푸리는 찰나 기억 저편의 장면이 떠오른 적 있는지. 혹은 불투명한 유리 너머에 나타난 조명의 형상이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킨 적 있는지.
신준민 작가의 이번 개인전 '화이트 섀도(White Shadow)'는 2년 전 아트스페이스펄에서 선보인 개인전과 조금 다른 분위기다. 당시 그는 산책하며 발견한 풍경이나 강물에 반짝이는 윤슬 등 자연의 빛에, 그 순간의 감정들을 담아 캔버스로 옮겼다.
그는 "반짝이는 하얀 것들에 집중하다보니, 점차 자연보다 빛에 더 집중하게 됐죠. 빛을 찾아다니거나 내가 직접 다양한 빛을 발하는 플래시를 들고 비춰보기도 했습니다. 빛을 비추는 나와 빛을 받는 대상, 그로 인해 생기는 현상, 빛을 컨트롤함에 따라 표현되는 다양한 형상 등 재미 있는 요소가 많다고 느꼈어요."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빛의 순간적인 잔상들로부터 떠오르는 어떤 것들이다. 작가는 그 모습을 포착해 캔버스나 종이에 드로잉한 것으로 모자라, 전시장 한 켠에 직접 빛의 잔상이 아른거리는 공간을 만들었다.
다양한 크기와 밝기로 깜빡이는 인공조명이 불투명한 간유리를 통과하며 다양한 형태의 잔상을 만들어낸다. 어릴 적 집의 현관문이나 옛날 가게의 문을 통해 본 것 같은, 퍼진 빛들의 모습이 관람객들 각자의 기억 속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도록 한 것.
작가는 "내가 느낀 빛의 결을 시각적, 촉각적으로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인공조명을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회화적으로도 빛과 그 잔상의 표현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빛의 하얀색이 다 같은 하얀색이 아니었으며, 가로등의 빛과 불꽃의 빛은 확연히 달랐기 때문. 그래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불꽃과 같은 뜨겁고 묵직한 느낌의 빛은 물감의 물성을 얹어내는 방식으로, 차가운 느낌의 빛은 물감을 닦아내는 방식 등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
작가는 "빛에만 고착화되지 않기 위해 앞으로의 작업에서도 빛에서 파생되는 여러 현상들을 끄집어내려 한다"며 "특정한 형상이 없는 빛이 공간과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형상을 포착하고, 물질성과 비물질성, 구상과 추상, 가시성과 비가시성 사이에서 교차되는 지점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신 작가의 개인전은 10월 12일까지 아트스페이스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 월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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