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신세계갤러리가 '추상유희(抽象遊戲)' 시리즈 전시의 네 번째로 차계남과 캐스퍼 강의 전시를 선보인다.
두 작가는 한지라는 재료적 공통분모로 추상회화를 개진한다.
깊이를 달리하는 흑백의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차계남의 작업은 무수한 인내와 수양이 담겨있다. 작가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한지 위에 먹으로 오랜 시간 붓글씨를 써내려간다. 이를 일정한 폭과 길이로 자른 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한 가닥의 한지 실을 꼬아 가로 세로로 붙여 나가는 작업을 반복한다.
일련의 수행과도 같은 과정을 통해 발현된 차계남의 작품은 그 자체로 숭고의 감정을 자아낸다. 작품 속에 담긴 글자체는 수천 수만의 점과 선으로 형상을 드러내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창조와 소멸의 영원한 순환을 담아낸다. 이는 차계남의 오랜 작업 여정의 집대성이며, 무한한 우주의 질서와 혼돈 속에서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나타내는 사유의 흔적이다.
검게 그을리고 설키고 얽히고, 흩날리고 너울진 캐스퍼 강의 작업은 시각적인 동시에 촉각적으로 다가와 다양한 감각을 아우른다. 지류의 질료적 실험이 감각적 형(形)과 결합된 작가의 추상은 무상(無像)의 상태를 이야기한다.
캐스퍼 강의 무상은 모든 것의 덧없음이라기 보다는 의미의 가능성을 찾기 위한 비워냄이다. 본래의 성질을 유추할 수 없을 만큼 해체되고, 또 이질적으로 결합된 작가의 촉각적 질료들은 고요한 정적을 깨우며 기존의 질서에서 자유롭게 해방된다. 그 사이의 풍경에서 떠오르는 에너지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이는 다시 채워짐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의미를 지워냄으로써 궁극적인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추상적 경험은 익숙함을 깨고 꿈틀거리는 새로운 감각으로 강렬하며 부드럽게 다가온다.
이시원 대구신세계갤러리 큐레이터는 "고유한 물성의 천착을 넘어서 각자의 삶과 생에 대한 사유를 담은 두 예술가의 태도와 흔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1월 12일까지 이어지며, 백화점 휴점일인 10월 21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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