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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75>나의 사랑하는 외할아버지

미술사 연구자

천경자(1924~2015),
천경자(1924~2015), '조부(祖父)', 1942년(19세), 비단에 채색, 153×127㎝, 리움미술관 소장

천경자는 1924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다. 올해가 탄생 100주년 되는 해다. 고흥보통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며 화가의 꿈을 키웠고 졸업 후 18세 때인 1941년 도쿄로 유학해 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그림을 배웠다. 당시 한반도에는 화가들의 개인 화숙(畵塾) 외에는 미술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으려면 일본으로 가야 했다.

미술 분야에서 작가나 교사가 되려는 일본 여성을 위해 설립된 여자미술전문학교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대만에서도 공부하러 왔던 국제 학교였다. 한국인 유학생만 해도 1900년부터 1950년대 초까지 200여 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유화를 그린 첫 여성화가인 정월(晶月) 나혜석(1896~1948)이 1913년 입학해 서양화를 배웠다. 전공은 일본화, 서양화뿐 아니라 자수, 조화(造花), 재봉 등이 있어 당시 여성의 '미술' 범주가 넓었음을 알려준다.

천경자는 "입체파, 야수파가 유행했던 당시의 서양화보다는 보다 곱고 섬세한 일본화가 생리에 맞아 나는 일본화과 고등과를 택했다"라고 했다. 3년 과정의 고등과를 다닌 천경자는 한 해 먼저 입학한 4년 과정의 사범과 일본화부의 박래현과 1943년 9월 함께 졸업했다. 태평양전쟁의 전시 상황이어서 조기졸업을 한 것이다.

해외 유학파 여성 동양화가인 천경자와 박래현은 이후 박래현이 타계하는 1970년대까지 쌍벽을 이루며 경쟁적으로 찬란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나이는 박래현이 네 살 위다.

'조부'는 천경자의 조선미술전람회 첫 입선작이다. 모델은 천경자가 '하르바니'라고 불렀던 외할아버지 박헌유다. 하르바니는 어린 천경자에게 천자문을 가르쳐주고 자신이 읽은 소설을 이야기로 들려주며 어린 천경자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북돋아 준 멋쟁이였다. 연녹색 방석 위에 수척하지만 엄정한 표정의 하르바니가 정면을 바라보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오른손엔 담뱃대를 들었고, 왼 무릎 앞에는 하르바니의 독서열을 상징하는 책(삼국지)과 안경을 그려 넣었다.

견고한 구성과 세밀한 묘사력이 돋보이지만 배경은 바닥과 벽도 구분해 놓지 않았다. 장소성이 소거돼 어떤 장소에도 소속되지 않는 듯 주인공의 추상적 존재감이 도드라지는 점, 인물을 상징하는 소품을 배치한 점, 가까운 주변에서 모델을 찾은 점 등 천경자 인물화의 특징이 이 초기작에도 나타난다. 비단에 그린 대작인 '조부'는 1995년 천경자가 직접 보수해 지금과 같은 말끔한 상태가 되었으므로 천경자 만년의 필치가 살짝 섞여있는 작품이다.

천경자가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으로 상설 전시관을 열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의 고향인 고흥에서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꾸려졌다. 고흥의 천경자 생가 인근에 '천경자예술길'이라는 명예도로명도 붙여졌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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