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 없이, 모든 것 조마조마" 웃음이 사라졌다

취업·경기회복 체감 못하고…물가 불안까지 겹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

연이은 대형 사건·사고로 일반 시민들의 얼굴에서도 희망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택시기사 이성곤(63) 씨는 요즘 그의 차를 타는 손님들 얼굴에서 희망보다 절망을 더 많이 목격한다. 이 씨는 "손님들의 표정도 대부분 어둡고 말을 건네도 '살기 팍팍하다' '눈 앞이 캄캄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지난해부터 큰 사건이 연이어 터지니 하루하루 사는 것도 벅찬 서민들은 더 혼란스럽다"며 운전대를 잡았다.

가장의 어깨도 무겁다. 직장인 박장석(40) 씨는 "경기가 위축돼 회사 사정이 불안할 때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터져서 세상이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어수선했다"며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 입장에서는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내년에는 대선 정국으로 정치에 모든 관심이 쏠릴텐데 올 한 해 만이라도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군에 간 아들을 둔 부모 마음은 더 쪼그라들었다. 주부 안명순(49) 씨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지 한 달도 안되어 연평도 포격 사태가 터졌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아들 걱정에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요즘에는 물가가 치솟아 빠듯한 살림에 설 명절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지었다.

대학생들은 전쟁 발발의 불안감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안이 더 두렵다고 했다.

박경훈(25·경북대) 씨는 "군대를 다녀오고 연평도 사태를 지켜봤지만 전쟁이 날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오지는 않는다. 다만 내 눈 앞에 닥친 학업과 취업 등 문제가 대학생들에게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뢰 실종, 불신 팽배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정부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연평도 포격 당시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회 단체들도 있다. 해병대전우회 대구시연합회 오정휘 국장은 "천안함의 경우 공격 대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연평도 포격은 북의 도발이라는 것이 명확했다. 어린 장병들이 포탄에 맞아 숨졌는데 정부는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며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며 "소극적인 대응은 북의 도발을 부추길 뿐"이라고 주장했다.

진보 시민 단체들은 한반도 긴장이 최고 수위까지 올라간 데는 현 정부의 탓이 크다고 보고 있다. 대구경북진보연대 김선우 집행위원장은 "일각에서 전 정부의 햇볕 정책 때문에 북이 도발을 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현 정부의 강경한 대북 정책이 남북간 대화의 물꼬를 막아 연평도 사태를 자극한 것"이라며 "다시는 국민이 불안에 떠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북 측과 조건없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구제역까지 전국으로 확산되자 '정부가 구제역 확산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들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최근 한국 사회를 덮친 대형 사건들이 국민과 정부간 신뢰의 고리를 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계명대 심리학과 손영화 교수는 "천안함 사건 때 정부가 국민들이 제기한 의문점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후 터진 대형 사태를 대할 때도 국민들은 정부가 하는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며 "정부 불신이 사회 구성원 전체를 불신하는 분위기로 이어지기 전에 정부는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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