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광대들 리뷰

영화 '광대들'
영화 '광대들'

'광대들: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은 팩션 사극이다.

팩션은 사실(팩트)과 픽션(가상)의 합성어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 낸 것을 말한다.

이 영화의 팩트는 1455년 7월부터 1468년 9월까지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의 실록에 나오는 기이한 일들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발생한 40여건의 이적 현상이다. 세조가 세운 원각사를 뒤덮은 황색구름과 향기로운 4가지 꽃비, 오대산에서 피부병을 낫게 해주었다는 문수보살, 금강산을 순행하던 세조 앞에 나타난 담무갈보살 등이다.

여기에 민간 야사가 더해졌다. 세조의 가마가 지나가자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린 속리산의 소나무(정이품송), 자객으로부터 세조를 구한 상원사 고양이 등이다. 영화는 실록의 기술에 광대들을 등장시켜 영화를 꾸며냈다.

영화 '광대들'
영화 '광대들'

풍문을 조작해 먹고 사는 광대들이 있다. 바람난 남편을 찾아달라는 등의 사소한 가정사들을 맡던 광대패 덕호(조진웅) 5인방. 어느 날 당대 최고의 권력자 한명회(손현주)가 찾아온다. 조카와 사육신을 잔인하게 죽여 왕이 된 세조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이 높자 이를 미담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덕호 패들은 목숨을 걸고, 이제껏 보지 못한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들의 아이디어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이 소문은 조선 팔도로 퍼져나간다.

영화는 가벼운 소동극으로 시작한다. 백그라운드 영상, 사운드, 각종 특수효과에 재간이 있는 5인 방들의 활약은 관객들을 유쾌하게 만든다. 세조 행차에 소나무가 길을 막자, 밧줄을 걸어 올리는 단순한 트릭이 갈수록 세어진다. 거대한 보살을 만들어 금강산 계곡을 채우고, 풍등을 띄워 천지에 꽃비를 내리게 한다.

실록에 적힌 기이한 일들을 조작해 만들어낸다는 발상은 아주 흥미롭고 창의적인 발상이다. 이런 트릭은 이 영화의 힘이다. 특수 기술로 500년 전 사람들을 홀리게 한다는 설정은 현대의 관객을 충분히 매료시킬 요소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는 또다시 진지 모드로 빠진다. 젊은 광대는 한명회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역적이라고 고함치고, 한명회를 세조를 내리려고 음모를 꾸미고, 세조는 그런 신하들에게 분노한다.

이 같은 급선회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왜 충분히 유쾌하고 즐거운 설정을 차버리고, 뻔한 사극의 스토리라인으로 돌아설까. 왜 충분히 달궈진 관객의 호감을 유지시키지 못할까. 아쉬운 대목이다.

영화 '광대들'
영화 '광대들'

조진웅, 고창석 등 배우들의 코믹 연기는 훌륭하다. 권력욕의 불꽃 화신인 한명회 역의 손현주의 굵은 연기 역시 무게감을 준다. 그러나 그의 연기가 이런 급선회의 가장 큰 원인이었기에 레코드 판 튀듯 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광대들:풍문조작단'의 원래 제목은 '조선공갈패'였다. 천한 직업인 광대들의 세상 풍자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부제인 풍문조작단은 현재 정치적 현실을 빗대어 시사하는 면이 있다. 현재 정치판의 혼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가짜뉴스다. 사실은 온데 간데 없이 민심만 흔들 수 있다면 그 어떤 가짜뉴스도 만들어내는 그 음험함을 500년 전 한명회를 비롯해 권력욕에 사로잡힌 미친 신하들로 풍자해주는 것이다.

영화 '광대들'
영화 '광대들'

김주호 감독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사적인 기록들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반영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의형제'(2010)의 각색, 좋은 영화였던 '허삼관'(2014)의 각본을 맡았고, 2012년 사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출했다.

팩션 사극보다 판타스틱 엔터테인먼트 풍자 사극이 더 적절한 '광대들:풍문조작단'은 늦여름을 가볍게 이겨내기에 충분히 가벼운 영화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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