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죽음의 일터

지난해 10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로 숨진 고 장덕준(당시 27세) 씨. 유족 제공
지난해 10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로 숨진 고 장덕준(당시 27세) 씨. 유족 제공
서광호 차장
서광호 차장

이달 12일은 대구 청년 장덕준 씨의 1주기였다. 장 씨는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집에서 '급성심근경색증'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입사 후 주 6일 고정 야간 근무를 했고, 16개월 동안 하루 평균 9~11시간을 일했다. 사망 전 일주일의 업무 시간은 무려 62시간 10분이었다.

장 씨의 1주기를 앞둔 지난 6일 전남 여수에선 홍정운 군이 바닷물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18세 고등학생인 홍 군은 요트업체 선착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 정박 중인 요트 바닥에 붙은 조개 등을 떼어내는 작업을 했다. 잠수 작업은 애초 홍 군의 업무가 아니었고, 2인 1조로 진행해야 한다는 안전 규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산업재해 사망자의 이름은 계속 쌓인다. 2016년 김모(19) 군은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전동차에 치였다. 2018년 김용균(24) 씨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송 설비를 점검하다가 머리와 몸이 롤러와 벨트에 빨려 들어갔다. 지난해 김재순(26) 씨는 광주의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일하다 파쇄기에 몸이 끼였다. 올해 4월 이선호(23) 씨는 경기 평택항의 개방형 컨테이너 벽체에 깔렸다.

이 외에도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의 '사망사고 속보'를 보면 산업재해 사례는 수두룩하다. 일터에서 떨어지거나 넘어져 죽고, 베이거나 찔려서 죽었다. 또 끼이거나 깔려서, 부딪히거나 맞아서 목숨을 잃었다. 현장의 철판 자재와 철골 기둥, 철근, 컨베이어, 롤러 기계, 덤프트럭, 트레일러, 화물차, 굴착기, 토사, 강화유리, 와이어 로프, 고압 전기 등이 한순간에 흉기가 됐다.

몸이 녹초가 되는 과로와 목숨을 앗아가는 위험이 있는 곳이 많은 이들의 일터다.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내 일터에서 죽거나 다친 사고 재해자는 3천453명이다. 하루에 10명꼴이다. 이 외에도 신체 부담 작업이나 요통,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난청 등 질병 재해자도 454명이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홍정운 군 사망에 대해 "현장실습 폐지는 올바른 해결 방법이 아니다"고 했다.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나 책임자 엄벌에 대한 약속은 들을 수 없었다. 생뚱맞게 '현장실습'을 앞세운 말이 전부였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가벼운 언급' 이후, 또다시 산업재해자의 이름은 잊히고 있다.

죽고 잊히고 또 죽는 이 같은 현실에 분노한 한 청년이 수십 년 전에 있었다. 바로 대구가 고향인 노동운동가 전태일이다. 다음 달 13일이면 사망한 지 51년이 되는 전태일은 1970년 22세에 숨을 거뒀다. 처참한 노동 현장을 알리고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고 외쳤다.

전태일은 17세의 나이에 상경해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혹사와 박봉에 시달리는 여공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그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하려던 탄원서에는 "영세민 자녀인 여공들은 평균 나이 15세로, 하루 16시간 일한다"고 적혀 있다.

반백 년이 지난 오늘날, 법을 지키라는 호소와 기계처럼 혹사하지 말라는 절규는 여전히 유효하다. 대구의 전태일과 장덕준. 이들의 죽음도 50년 세월을 사이에 두고 닮아 있다. 생전에 겪은 일터의 가혹함이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다. 재봉틀을 돌리는 일이 상자를 옮기는 작업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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