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슬픔의 누적에서 오는 것

권기철 화가
권기철 화가

요즘 미술시장이 더없이 들뜨고 부산하다. 각종 아트페어가 특히 그렇다. 심미안을 갖추고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그만한 가치를 매기고 사들이는 것은 미술시장 성장에 원동력이 된다. 아무튼 출렁이는 파고가 고무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오늘은 이와는 결이 반대인 이야기를 꺼낼까 한다. 얼마 전 어느 아트센터 대표와 나눈 얘기 한 자락을 소개한다.

"몇 년 전인 것 같네요. 어느 작가의 초대전 오픈 날 작품 가격을 봤습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그림, 소품 한 점에 1억원이라는 가격을 붙여 놨더군요. 한 점에 사오십만원에 팔릴까 말까 하는 작품처럼 보였는데 말이죠. 저도 '아, 이건 아닌데…. 이런 작품은 하늘이 무너져도 팔릴 수 없겠다'라고 생각했죠. 어느 틈에 그 작가가 옆에서 말하더군요. 자신은 그 작품이 무척 좋기 때문에 1억원에 팔겠다고요."

"지금도 작가가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나요?"

"미술 동네에서 사라졌죠."

가령 갤러리스트가 특정 작가가 앞으로 훌륭한 예술가가 될 것이라 내다보고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덜컥 작품을 샀다고 치자. 하지만 3년 후에 보니 그 작가가 노래방 점주를 하고 있다면. 이때부터 그 작품은 화가의 작품이 아니라 노래방 점주의 작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에피소드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돈다. 물론 이런 삶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화가로 살다 직업을 바꾸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업종 변경이란 말은 그다지 대수롭진 않다. 그냥 붓을 꺾으면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감히 말하고 싶다. 경제력을 갖춘 후에 다시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마시라는 거다. 대부분은 미술 동네로 돌아오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의 속성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 돈의 속성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안락한 관능으로 데려갈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미술대 졸업 후 개인전 몇 번 하고 살기 각박해 다른 일을 한다거나, 관련 업종을 오픈한다거나, 취직을 하는 것은 각자의 뜻이니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다른 업종으로 돈을 많이 벌면 화가로 절대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때부터 작품 활동은 취미가 된다.

다른 길로 갔다가 돈도 못 벌고 이리저리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 그들은 이런 말을 하며 미술계 언저리로 돌아온다. "나에게는 예술이 딱 천직인 것 같다. 오로지 이것밖에 없어"라고. 그럭저럭 10여 년 후의 복귀다. 그땐 이미 늦다. 예술적 감각이 무뎌지고 촉수가 현격히 굳어있기 때문에 창작은 더욱 힘들어진다.

화가라는 직업은 특별한 자격도 없다. 그렇다고 예술가의 길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대 졸업자의 영역이 아니다. 돈 잘 벌면 거기에서 취미로 그림을 찾지만, 다시 미술 동네로 돌아와 기웃거린들 이 동네가 사회의 낙오자가 행하는 호락호락한 배설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창작은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독과 슬픔의 누적에서 오는 것이지, 행복한 것들의 축척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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