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풍류대장’, 제2의 이날치는 탄생할까

‘풍류대장’, 국악의 현재화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JTBC 예능 '풍류대장' 포스터. JTBC 제공
JTBC 예능 '풍류대장' 포스터. JTBC 제공

최근 국악은 그 변신이 놀라울 정도다. 국악과 가요의 만남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도된 것이지만, 최근에는 갖가지 장르와의 퓨전을 통해 국악은 옛 음악이 아닌 '현재화'를 도모하고 있다. JTBC '풍류대장'은 이런 흐름에 발맞춰 나온 국악 퓨전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국악, 이렇게 힙할 수 있을까

"자~ 네가 단 한번의 기회로 원했던 걸 모두 얻을 수 있게 된다면 그 기회를 잡을 텐가, 아님 날려 보낼 터인가~"

JTBC '풍류대장'에 나온 최예림은 에미넴의 'Lose Yourself'을 자신의 이야기로 가사를 붙여 재해석했다. 본래 국악인이었지만 그것만 갖고는 살 수 없었던 현실. 그래서 그는 KBS '6시 내고향'의 리포터로 활동했다. 폭풍 같은 랩을 쏟아내지만, 어딘가 국악 창법이 어우러져 기묘한 카타르시스와 전율이 느껴지는 무대.

특히 자신의 처지를 담은 가사들은 왜 '풍류대장'이라는 국악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들을 담고 있었다. "국악하면 먹고 살기 힘들고 춥고 배고픈 게 아티스트고, 돈을 밝히면 속물이고~"같은 국악인들의 처지를 담은 랩 가사는 "돈도 도로 하나 가득, 쌀도 도로 하나 가득~"같은 흥보가의 박타는 대목과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순간 국악이 '이렇게 힙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JTBC 예능 '풍류대장'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예능 '풍류대장'의 한 장면. JTBC 제공

생계 때문에 판소리를 접으려 했지만 다시 소리판으로 돌아온 신동재가 리쌍의 '독기'와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부른 무대에서도 국악인들의 쉽지 않은 현실이 묻어난다.

"내 나이 열셋 적 소릿길에 들었고 그 험한 길 흥에 취해 걸었지.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소리였는데 결국 내게 원한 건 돈이더라~. 근데 울 아버지 말씀하시길 동재야~ 포기 마라. 지나고 나면 그것이 다 네 소리다~."

국악과 힙합이 접목된 것이지만, 무엇보다 메시지를 담는 힙합 특유의 색깔과 판소리 특유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더해지면서 커다란 울림을 만든다. 신동재는 두 번째 무대에서 한영애의 '조율'을 가져와 코로나19로 힘겨워진 현실에 잔잔한 위로의 목소리를 더한다.

"우리 앞집 명자 이모는 월세를 못 내서 가게 문을 닫았구요. 저 뒷집 덕호 아부지는 30년 다니던 회사에서 짤려 부렀대요.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 들어본 지가 언젠지…. 보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은데, 맘 편히 볼 수도 없어요. 사는 게 참 힘든디요.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우리에게 펼쳐질 봄날을 기다려 봐요."

JTBC 예능 '풍류대장'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예능 '풍류대장'의 한 장면. JTBC 제공

국악이 정해진 옛소리들에만 머물지 않고 거기에 현재적 상황들을 더해 가사를 붙여 현재의 장르들과 결합하는 것. 즉 '풍류대장'이 지향하는 국악 크로스오버는 최예림과 신동재가 보여준 것처럼 과거에 머물던 국악을 '현재화'하는 것에 있다.

K팝이 전 세계인에게 익숙한 하나의 장르로 서고 있는 지금, 국악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건 거기 우리 음악의 뿌리가 있으며, 나아가 이 독보적인 로컬의 색깔을 성공적으로 현재화해낼 때 그 어디서도 만들어낼 수 없는 힙한 음악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풍류대장'의 존재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견된다.

◆이날치, 고영열 등으로 본 가능성

'국악은 고루하다?' 한때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는 그렇지 않다. 최근 이날치 신드롬이라고 해도 될 법한 현상이 벌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판소리 '수궁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부른 이날치의 'Tiger is coming'(범 내려온다)같은 곡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판소리 원곡에 베이스와 드럼이 더해지면서 마치 '클럽 음악'같은 힙한 색깔을 부여했다.

다소 박제화된 판소리의 한 대목이 현재적 해석을 통해 독특한 리듬의 춤곡으로 변모한 것. 이 음악에 더해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댄스 또한 모두가 따라하고픈 유행을 선도했다. 유튜브를 타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반응이 폭발한 이유다. 이날치는 스스로를 국악인이라 부르지 않고 얼터너티브 팝 밴드라 불렀다. 그만큼 현재성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JTBC 예능 '풍류대장'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예능 '풍류대장'의 한 장면. JTBC 제공

이날치 밴드 이전에는 경기민요 전수가 이희문이 이끄는 씽씽밴드가 있었다. 2017년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의 간판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s)에서 민요메들리를 펑키한 리듬에 맞춰 부름으로써 현지의 열광적인 반응을 불렀다.

국악의 크로스오버를 일찍이 시도했던 이희문이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만든 국악 크로스오버 '한국남자' 역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국악은 이처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도, 또 재즈와도, 나아가 힙합과도 어우러지는 음악으로 대중에게 성큼 다가왔다.

'풍류대장'의 탄생에는 JTBC가 해왔던 일련의 음악 프로그램들 속에서 가능성을 보였던 국악인들의 영향도 적잖게 작용했다. 즉 '풍류대장'에 참가했던 고영열은 '팬텀싱어'를 통해 일찍이 월드 뮤직과 국악의 접목을 성공적으로 시도한 바 있고, 최근 종영한 '슈퍼밴드2'에 출연했던 박다울은 거문고를 가져와 밴드 음악과 접목해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악은 이미 현재화를 통해 힙한 음악으로 대중들 앞에 다시 서게 되었고, '풍류대장'은 그 판을 깔아준 것이었다.

JTBC 예능 '풍류대장'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예능 '풍류대장'의 한 장면. JTBC 제공

◆국악이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풍류대장'에 나온 출연자들은 국악계에서도 이미 이름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400회 이상 해외공연'을 한 국악그룹은 물론이고 국내 최고의 국악 콩쿠르 수상자들이 대거 출연했다. 전현무 MC가 '전주 대사습놀이 수상' 같은 경력은 '풍류대장의 기본'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 출연자들이 말해주는 건 최예림이 첫 무대에서 노랫말로 엮었듯 '국악하면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이다. 오히려 해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설 무대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풍류대장'같은 오디션 형식의 무대라도 설 수만 있다면 마다치 않는 실력자들이 넘쳐난다. 코로나19로 공연을 업으로 하는 아티스트 대부분이 무대를 잃었지만, 그 중에서도 국악을 하는 이들은 더 어려워졌다.

물론 국악이 이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건 국악계가 한때 완고한 보수성을 드러내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1960, 70년대까지만 해도 대중가수 상당수가 민요를 부를 정도로 국악은 대중적이었다. 국악방송이 매주 있었고, 조상현 같은 명창은 당대의 스타였다. 1980년대 코미디언 김병조의 "지구를 떠나거라~"와 같은 유행어에 국악 창법을 넣을 정도로 국악은 대중에게 가까이 있었다.

국악을 대중 앞에 내놓으려 노력한 건 대중 가수들이었다. 가왕 조용필이 '한오백년'같은 곡으로 민요가락의 절절함을 대중들에게 전해줬고, 작은 거인 김수철은 국악과 밴드음악의 교접을 실험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하여가'에 태평소 가락을 넣었고, 지드래곤은 '늴리리야'같은 곡으로 국악의 추임새를 흥겹게 풀어냈다.

이런 흐름은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진다. K팝을 전면에서 이끌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은 2018년 발표한 'Idol'에 '덩기덕 쿵더러러러'같은 굿거리장단과 '얼쑤'같은 추임새를 넣었고, BTS 멤버인 슈가는 '대취타'라는 솔로곡에 전통음악 대취타 연주를 담았다.

다행스러운 건 국악이 이러한 K팝의 성장과 더불어 그 고유한 로컬의 색을 끄집어내는 데 중요한 음악적 자산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악계도 이제 과거가 아닌 현재화에 방점을 찍으며 대중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퓨전이든, 크로스오버든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닌 현재 즐길 수 있는 국악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풍류대장'은 지금 그 길 하나를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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