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야 씻어야 낸다고 해도 우리 영감 제사며 앞으로 질긴 목숨은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요."
태풍이 할퀴고 간 흉터는 포항지역에 깊은 골을 남겼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현재 임시구호소와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며 두고 온 집 걱정에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6일 오후 포항시 남구 대송면 다목적복지센터. 좁은 입구를 떠내려 온 차량들이 막아서며 차량은커녕 사람들이 지나기도 쉽지 않다. 약 100m 길이의 입구와 주차장에도 흙탕물이 들이차며 푹푹 빠지는 진흙탕으로 변해버렸다. 칠성천과 바로 인접한 이곳은 폭우로 하천이 범람해 1층까지 침수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이곳에는 현재 주변에서 피신한 이재민들 수십명이 피신해 있다. 더 낮은 지대의 주택지역에 허리춤까지 물이 들이차며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다. 취재 당시까지 물에 빠지지 않은 이 지역은 흙탕물과 오물들로 뒤덮여 장화가 없으며 아예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였다. 새벽녘에는 워낙 물살이 거센 탓에 동장 등 마을 주민들이 미처 피하지 못한 주민들을 구조하려 했으나 걸음을 옮기지 못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주민들은 새벽녘 전기도 끊기고 순식간에 불어난 물로 급박한 상황에서 귀중품은커녕 휴대전화마저 챙기기 어려웠다. 취재를 하는 짧은 순간에도 구호소에서는 연락이 되지 않은 자녀와 친척들로부터 이들을 찾는 전화가 수시로 들려왔다.
구호소에 피신해 있던 어머니를 찾아온 A(50) 씨는 "어머니가 전화를 물에 빠뜨려버려 연락이 되지 않아 밤새 속을 졸였다. 결국 옆동네에 살던 오빠가 1시간을 넘게 태풍을 뚫고 걸어와 집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어머니를 구했다"면서 "무사해주셔서 고맙지만 팔순 넘은 노모가 이렇게 고생을 하시고 계신 모습을 보니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칠성천 부근 마을은 6일 오전 4시쯤부터 20~30여분만에 물이 갑자기 불어나 급박한 상황이 펼쳐졌다. 약 1m가량 물이 들이차자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방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구급대원의 손에 이끌려 겨우 피신한 주민도 있었다.
포항시 남구 대송면의 김군자(87) 씨는 "전기가 끊겨 손전등 빛에 의지해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했지만 도저히 문이 열리지 않아 배꼽까지 물이 차오른 거실에서 마냥 서 있었다. 이렇게 죽는가 싶었다"면서 "119구급대에 신고했지만 워낙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구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숨 돌리고 나니 앞으로 살아갈 일도 막막하고 '우리 영감 제사는 어떻게 지내나'하는 걱정에 추석이 다가오는 것이 서럽게마저 느껴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휴대전화와 입고 있는 옷이 갈무리한 물품 전부라는 김 씨는 "김치냉장고가 물에 떠오르고 장롱이 넘어지는 등 집이 폭탄을 맞은 것 같다"고 수해 당시를 회상했다.
농촌지역인 탓에 김 씨의 경우처럼 이곳 이재민들은 70~80대의 고령이 대부분이다. 으레 혈압약 등 장기 복용을 요하는 약들을 먹어야 하지만,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이라 이들의 건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다목적복지센터의 입구가 막혀 차량 진입이 어려워 생수와 컵라면 등 끼니를 떼울 기본 생필품 외에는 제대로 된 구호물품조차 곧바로 지급되지 못했다.
한편, 6일 오후 6시 현재 포항지역에는 1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77곳의 임시구호소에 대피해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공공시설 300억원, 사유시설 1천713억원의 피해가 집계됐으나 현재 피해조사 초기단계라 향후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면 피해규모가 더욱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포항시는 대통령실과의 영상회의를 통해 특별재난구역 선포를 요청했으며, 대통령실 측은 면밀한 조사를 통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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