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초까지만 해도 쌀이 늘 부족했다.
그래서 이듬해 늦봄, 보리가 나올 때까지는 밥 먹듯 굶어야 했다.
'통일벼'가 이 어려운 시기(보릿고개)를 덜게 했다. 1972년 전국에 보급된 통일벼는 다른 품종에 비해 몇 배나 많은 수확량을 내 '효자 쌀'로 불렸다. 지금은 주식의 다변화로 자취를 감췄지만 그때는 가히 '녹색혁명'으로 평가받았다.
흔히, 반도체는 '4차 산업의 쌀'에 비유되곤 한다.
모든 전기·전자제품에 탑재되고 드론, 전기차, 인공지능(AI) 등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제품군과 산업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반도체는 특정한 조건에서 전류가 흐르는 도체와 흐르지 않는 부도체의 중간 성질을 가진 물질을 말한다. 좁쌀만 한 게 집채 만 한 진공관을 대체한다고 하니, 신통방통한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도깨비방망이 같은 반도체가 경북과 구미 경제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고 전문가 2만 명을 키우는 '경북 반도체 산업 초격차(超隔差) 전략'을 지난 1일 발표했다. 지방 소멸 해법과 경북 청년의 미래를 반도체 산업에서 찾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김장호 구미시장도 반도체 특구 지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경북 구미는 반도체에 관해선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반도체 기반만 보더라도 전국 최고 수준이다. 구미산단 내 반도체 관련 기업은 모두 123곳, 종사자 수는 9천여 명에 이른다. SK실트론·삼성SDI(소재 부문)·LG이노텍 등 대기업뿐만 아니라 원익큐엔씨·매그나칩반도체 같은 중견기업도 많다. 반도체 물류에 필수인 공항도 생긴다.
구미산단은 또 어떠한가. 반도체 초격차 전략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당장 '안정성'이란 키워드가 돋보인다. 경북 성주의 사드기지, 신공항 등 산단 주변의 대공 방어 능력이 한층 강화된다. 유사시 산단 내 반도체 시설의 안정성이 담보된다.
풍부한 낙동강 수계에서는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대량의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안정적'인 전기 공급은 덤이다. 경북 동해안의 원자력 발전소가 생산해 내는 값싼 전기는 미래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까지 보증한다. 거리에 따라 차등 요금이 적용될 여지가 있는 전기를 바로 옆 동네(?)에서 끌어온다니, 이보다 더 저렴할 수 없다.
무형의 조건도 우수하다.
오랫동안 삼성, LG와 함께 터전을 일구어 온 구미 시민들에겐 반도체 DNA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미산단 근로자 10명 중 1명이 반도체 관련 기업에서 근무한다.
반도체 산업 육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이철우 도지사와 김장호 시장의 찰떡궁합도 기대를 갖게 한다. 이들은 과거 경북도에서 경제부지사와 투자유치과장으로 함께 근무하며 현대모비스, 아사히글라스 등 굵직한 대기업을 지역에 유치한 '경제 콤비'로 통한다.
이렇듯 반도체 1번지 구미를 정부가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최선(구미)을 제쳐 두고서 초격차의 미학인 반도체를 키우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경북은 지난 대선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로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을 견인했다. 이제는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의 대의를 갖고 경북에 화답할 차례다. 구미 출신 박정희 전 대통령은 통일벼로 먹는 가난을 끊게 했다. 이제는 '산업의 쌀(반도체)'로 지금의 '경제 보릿고개'를 넘어내야 한다. 나아가 대한민국 경제를 세계 속에 우뚝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반도체에 가장 기름진 땅인 경북이, 구미가, 반도체의 최대 곡창지대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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