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지하주차장 참사 8일 첫 발인…유족들 "생전 잘하지 못해 죄송"

장례식장 곳곳 울음바다…최초 발인 허모 씨의 남편·아들은 슬픔에 넋나간 모습
15세 아들 보낸 생존女는 벅찬 슬픔, 건강히 구조된 30대 男 가족은 안도…희비교차

8일 오전 포항시 북구 용흥동 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서 포항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참사로 희생된 허모(55) 씨의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다. 독자 제공.
8일 오전 포항시 북구 용흥동 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서 포항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참사로 희생된 허모(55) 씨의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다. 독자 제공.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참사의 희생자 유족들 슬픔이 포항을 울렸다. 12시간 넘게 실종됐다 구조된 이들의 희비가 엇갈린 가운데 눈물 속 발인식이 이뤄졌다.

8일 오전 9시 경북 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사망자 허모(54) 씨의 발인식. 장례지도사의 도움을 받아 20대 아들이 어머니 영정을 든 채 장례식장 밖으로 나갔다. 두 딸은 운구차에 어머니 관이 실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허 씨 남편은 이 모습을 말없이 지켜만 볼 뿐이었다.

하지만 운구차가 포항시립화장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에 억지로 참던 울음이 끝내 통곡으로 번졌다.

허 씨는 지난 6일 오전 태풍 '힌남노'가 지날 당시 남편 대신 차를 빼러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가 실종됐다. 심정지 상태로 구조됐으나 초기 실종자 명단에 오르지 않아 신원미상으로 분류됐던 그는 포항의료원이 유족에게 신원불명자 확인 통보를 요청하고서야 신원이 확인됐다.

허 씨 아들은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타지에서 달려왔다. 수색 막바지까지 현장에서 지켜봤다. 자상하셨던 어머니께 평소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이날 장례식장 곳곳이 울음바다였다. 이번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참사로 숨진 이들은 모두 7명이다. 유족들은 합동 장례식 없이 각자 가족을 떠나보내기로 했다. 허 씨 외에 다른 이들은 9일 오전 차례로 발인할 예정이다.

7일 오후 포항시 북구 용흥동 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참사 희생자 7명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배형욱 기자
7일 오후 포항시 북구 용흥동 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참사 희생자 7명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배형욱 기자

소방당국 실종신고 명단에 없던 60대 부부 남모(68) 씨와 권모(65) 씨도 한 식구가 함께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구조 직후 추가 실종자로 분류됐다.

참사 당시 이들 부부의 아들과 며느리가 소방당국 브리핑 현장에서 "시부모와 연락이 안 된다"며 추가 실종자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부부의 휴대전화는 모두 방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해병대에서 전역한 20대 사망자 서모(22) 씨는 경북경찰청 독도경비대원인 형 서 순경의 차를 빼주러 갔다가 사고에 처했다.

형인 서 순경은 기상 여건 탓에 독도에서 나오지 못하다가 참사 다음날인 지난 7일 경찰이 급파해준 헬기를 타고 포항공항에 내려 동생의 마지막 길을 챙길 수 있었다.

그는 "동생과 평소 통화를 자주 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묻곤 했다. 두 달 전 휴가 때도 동생과 드라이브했다"고 떠올렸다.

삼남매 맏이로 노모를 모시고 살겠다며 20년 간 사고 아파트에서 살았던 홍모(53) 씨 빈소는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자리를 지켰다. 노모와 동생은 망연자실한 채 조문실 벽에 기대 한숨과 눈물짓기를 반복했다.

홍 씨 어머니는 "배수 작업이 조금이라도 빨랐으면 낫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가득하다. 아들 팔 등에 상처가 많았다. 마지막까지 살려고 애쓰다가 이리저리 부딪힌 것 같다. 마지막이라도 편하게 갔어야 하는데"라며 흐느꼈다.

그의 여동생도 "오빠는 계단을 통해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 차량 출입구 쪽에서 주차장으로 물이 밀려드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6일 저녁 태풍
6일 저녁 태풍 '힌남노'의 폭우로 잠긴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소방·군 관계자들이 실종된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종자 중 두 번째로 생존한 채 구조된 김모(52) 씨의 중학생 아들 김모(14) 군 빈소는 앳된 모습의 친구들과 몇몇 가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친구들에 따르면 김 군은 평소 친구들을 웃게 하는 재미있고 착한 친구로,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는 사고 당시 차를 옮기러 가는 어머니를 뒤따라 나갔다가 어머니가 차에 갇히자 운전석 문을 열고 탈출을 도왔다.

금세 물이 불어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고, 체력이 떨어진 어머니가 김 군에게 "너만이라도 살라"며 주차장 밖으로 내보냈다. 당시 김 군은 출구쪽으로 사라졌으나 이내 고립돼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됐다.

김 군 유가족에 따르면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엄마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 씨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고, 이것이 모자의 마지막 대화가 됐다.

어머니는 홀로 사투한 끝에 14시간 뒤인 6일 오후 9시 41분쯤 소방 수색대원들에게 저체온증 증세를 보인 채 구조됐다. 김 군은 불과 3시간 뒤인 7일 오전 0시 35분쯤 주차장 뒤편 계단 주변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어머니 김 씨는 구조 12시간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겨 회복하고 있으나 곁에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왜 여기에 있나, 내 아들은 어딨느냐"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난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에서 8일 경찰, 소방 등이 1차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난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에서 8일 경찰, 소방 등이 1차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종자 대부분은 아파트 1단지 주민이다. 유일한 2단지 주민 안모(76) 씨는 십자성 부대 출신으로 1년 6개월 간 월남전에 참전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통장으로 활동하며 가족과 주민을 위해 늘 바쁘게 지냈다.

포항시는 이들의 장례를 돕고 있다. 다른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비슷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주민 주모(66) 씨, 급류에 휩쓸려 숨진 60대 여성의 발인은 8일 각각 엄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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