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중국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은 승리했지만 내전 첫해인 1946년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만주에서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부군(國府軍)이 전략 요충지인 선양(瀋陽)과 창춘(長春)을 점령하고 주요 철도와 교통로를 장악했다. 이에 따라 남만(南滿)과 북만(北滿)을 잇는 통로가 없어져 공산당은 물자는 물론 병력 수송도 불가능하게 돼 국부군에 각개 격파될 처지로 몰렸다.
중국공산당은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김일성은 적극 호응했다. 1946년 봄 일본군이 남긴 무기 10만 정을 무상(無償)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북한은 중공의 후방 기지가 돼 철도와 해운으로 무기와 식량, 석탄, 의약품, 소금과 각종 공산품 등 전쟁 물자를 유·무상으로 지원했다. 그 양은 화물열차 2천 량(輛)분에 이른다.
1947년의 경우 전반기 7개월 동안만 21만t을 실어 보냈고, 1948년에는 38만9천t, 국공내전 마지막 해인 1949년에는 30만t가량을 수송했다.
여기에는 일본군이 두고 간 군수품뿐만 아니라 흥남비료공장에서 생산된 폭약과 비료, 신발 등 북한이 생산한 물자도 있었다. 이 중 비료는 중공이 산둥(山東)에서 폭약으로 제조했다. 흥남비료공장이 중공의 폭약 공급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신발의 경우 김일성은 1947년 다른 신발 생산은 모두 중지시키고 중공에 보내는 신발만 만들도록 모든 신발공장에 긴급 지령을 내렸다. 북한이 2008년 발간한 '중국 동북해방전쟁을 도와'에 따르면 김일성은 중공에 보내기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북한 전역에서 면직물도 징발했다. 이런 전폭적 지원에 중공은 식량 5만t을 대금으로 지불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 제재로 탄약 생산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에서 미사일과 포탄을 대량 구입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를 미국 백악관이 6일 확인했다. 미 정보 당국은 북한의 포탄 보유량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양은 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76년 전 마오쩌둥의 중국 적화(赤化) 후방 기지 역할을 한 데 이어 이제는 러시아의 탄약 보급기지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북한 포탄 중 불발탄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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