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만 버티면 된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예능 '더 존: 버텨야 산다'는 특정 상황을 버틴다는 새로운 콘셉트를 가진 예능프로그램이다. 어찌 보면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상황들. 그 상황이 주는 재미가 분명하지만, 동시에 거기 담긴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
◆팔각존에 담긴 조효진 PD의 야망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더 존: 버텨야 산다'(이하 더 존)는 그 제목 속에 이른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삶의 한 방식이 되어 있는 이른바 '존버'(버티고 버틴다는 뜻)를 심어 놓았다. 지금껏 SBS '런닝맨'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범인은 바로 너' 같은 게임 예능에서 일가를 이룬 조효진 PD가 이번 '더 존'으로, 하필이면 '버티는' 예능을 가져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갈수록 각자도생의 삶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청춘들이 갖게 된 '버티는 삶'에 대한 정서가 그 첫 번째 이유라면, 코로나19로 인해 전 지구적인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로 도래한 '생존'에 대한 체감이 그 두 번째 이유다.
전자가 한국적 삶이 가진 로컬의 문제를 드러내는 정서라면, 후자는 글로벌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K예능이 그 시장에서 존재감을 그리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 '더 존'에 담겨진 조효진 PD의 야망이 느껴진다.
조효진 PD의 이러한 야망은 여러 생존 상황 속으로 인도하는, 마치 타임캡슐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팔각존'의 공간 구성 속에서도 느껴진다. '균형의 심벌 팔각존'은 팔각정을 세트화한 것으로 그 디자인이 사이버 개념을 담은 구조물의 외형을 가졌다. 디지털적인 디자인 요소와 아날로그적인 형태가 어우러진 이 팔각존은 누가 봐도 한국의 전통적인 팔각정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초록이 만발한 꽃과 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한국의 전통이 가진 로컬적인 색깔과 문만 열고 나가면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어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듯한 사이버 느낌이 더해진데다, 이들이 앞으로 맞닥뜨릴 재난 같은 생존 상황과 상반되는 환경과 자연의 의미를 담은 구성이다. 로컬과 글로벌,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겹쳐지고 여기에 환경 같은 글로벌 공감대까지를 아우르고픈 욕망이 이 팔각존에서부터 느껴진다.
그 팔각존으로 유재석과 이광수 그리고 권유리가 들어온다. 그리고 AI U(유희열)의 목소리로 앞으로 이들이 겪어야할 일들이 소개된다. 갖가지 주어진 상황에서 4시간을 버티면 '제트코인'을 준다는 것. 그 코인이 나중에 어떤 용도로 쓰일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생존상황들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AI U는 이들에게 일종의 룰을 설명하며 이 프로그램이 무얼 보여줄 것인가를 예감하게 해준다. "여러분은 앞으로 여러 가상공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린 이 공간들을 더 존이라고 부르고요. 더 존에서 미래에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다양한 극한의 상황을 버텨보는 시뮬레이션들을 여러분들이 수행하시면 됩니다."
◆'존버'의 시대, '생존예능' 승부수
그런데 여기 팔각존에 들어온 유재석과 이광수 그리고 권유리는 그냥 이 미션을 수행하는 출연자의 의미만으로 온 게 아니다. AI U는 이들이 이른바 '인류대표'로 이곳에 모이게 됐다며, 유재석이 '휴머니즘'을 대표한다면, 이광수는 '유머'를, 그리고 권유리는 '하모니'를 대표한다고 밝힌다. 이 키워드는 이들의 반전 캐릭터가 되면서 향후 이 생존예능이 어떤 상황들을 버텨내기 위해서 필요한 세 요소라고도 읽힌다. 즉, 휴머니즘을 대표한다던 유재석이 극한 상황에서 "야 이 XX야"라는 욕을 남발하고, 유머를 대표한다는 이광수가 "포기하시죠"를 연발하는 그런 모습들로 시작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결국에는 그 요소들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소 거창한 주제의식들을 풀어 놓는 건, 앞으로 이들이 맞닥뜨릴 상황들이 만만찮다는 걸 염두에 둔 포석이다. 즉 어찌 보면 가학적이고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의 목적은 자극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생존상황'을 재연하기 위함이라는 걸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중요할 수 있는데, 자칫 이 생존상황을 버틴다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에 재미만큼 부여된 의미가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AI U는 여기에 또 하나의 장치를 부여한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싶으면 언제든 누를 수 있는 '포기 버튼'을 각자 주어진 스마트워치에 준비해 놓은 것. 이들의 버티기에 자발성을 부여하려는 의미다.
그리고 시작된 첫 번째 시뮬레이션. 팔각존을 빠져나오자마자 이들이 맞닥뜨린 건 폐건물 속에 있는 자신들이다. 짤깍짤깍 흐르는 시간을 그저 4시간만 버티면 되니 쉬울 듯싶지만 영하10도의 날씨에 여기저기 출몰하는 눈동자들과 눈이 마주치면 어디선가 뿌려지는 물 폭탄으로 이들은 극한의 추위와 마주하게 된다. 이 존의 이름은 그래서 '아이(Eye) 존'. 이들의 대환장 극한 생존 상황들이 연달아 연출되며, 그 안에서 버텨내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찾아내고 실행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보다 리얼한 버티기 상황극
첫 번째 시뮬레이션 '아이 존'이 극한의 추위와 싸우는 미션이었다면, 두 번째 시뮬레이션 '워터 존'에서는 '정확한 수위를 지키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그건 금세 짐작할 수 있듯이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해 올라가는 수면 상승으로 이미 물에 잠겨가는 섬이 존재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또, 세 번째 시뮬레이션 '바이러스 존'은 '인간성을 지키라'는 미션이 주어지는데, 과거로 돌아간 시공간 속에서 '킹덤'을 연상시키는 좀비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그 목표다. 여기서 굳이 '인간성을 지키라'는 미션이 부여된 건, 유재석과 이광수가 달려드는 좀비들 사이에서 도망치지 않고 권유리를 지켜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웃음의 요소로 "준수한 이들만 문다"는 설정이 들어가자 유재석과 이광수는 일종의 '타고난 면역자'가 되어 물리지 않는 상황이 되고, 결국 유일하게 공격받는 권유리를 이들이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코로나19로 경험한 팬데믹 상황에서 나만 살겠다는 것이 모두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이 코믹한 설정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더 존'은 그 상황들이 조효진 PD의 전작들이었던 '런닝맨'이나 '범인은 바로 너'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 그만큼 상황 자체가 극한으로 설정되어 있어서다. 하지만 그러한 다소 자극적인 설정을 불편하지 않게 해주는 건 이들이 이 버티기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주는 공감대 때문이다. 기후 위기와 지구 온난화, 그리고 팬데믹 같은 전 지구적 위기는 우리만이 아닌 전 세계인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무엇보다 이를 시뮬레이션을 통한 웃음으로 전하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시선을 사로잡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런닝맨'에서부터 '범인은 바로 너'를 거쳐 국내만이 아닌 해외에서 K예능의 저력을 드러내려 노력해온 조효진 PD의 경험치가 '더 존'에서는 느껴진다. 자막을 최소화하고 문화적 정서적 장벽을 넘는 보다 쉬운 웃음의 포인트들을 찾아내며 동시에 그 게임 예능 속에 글로벌 공감대를 심어 넣으려는 시도까지 더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더 존'이 어느 정도의 글로벌한 인기를 가져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시도와 노력들이 갖는 도전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글로벌한 인기를 구가할 이른바 'K예능 존'을 향해 가는 도전으로써 이 생존예능의 승부수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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