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가고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자 바로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3개월 연속 적자로 돌아섰고, 이 때문에 탈중국화 논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를 제외한 한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이미 2021년부터 시작되었는데, 2022년 9월에 들어와 갑자기 중국에 큰 지각변동이 난 것처럼 호들갑이다. 중국의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고, 중국이 대불황에 빠졌다는 얘기가 넘쳐 난다. 그러나 3개월 만에 산업구조가 바뀌거나 성장이 한계에 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반도체나 중국의 성장잠재력의 소멸이 아니라 한국의 공급망 전략과 반도체 이외 산업의 대중 경쟁력이 문제라는 것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3개월 연속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 전환은 속을 들여다보면 공급망의 복수다. 한국의 반도체, 희토류, 리튬이온 배터리 원자재 대중 의존도는 각각 40%, 52%, 93%나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기가 된 국제 원자재 가격의 폭등으로 인해 이들 품목에서 대중국 수입 원자재와 부품 가격의 폭등이 무역적자를 만든 주범이다. 반도체가 벌어들인 무역흑자를 배터리, 무선통신, 컴퓨터가 다 까먹었다.
그리고 중국의 성장잠재력이 아니라 한국의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의 경쟁력이 문제다. 세계 1위인 한국 스마트폰과 세계 3위 자동차업계의 중국 시장점유율이 각각 0%대, 2%대로 추락한 것을 가지고 여전히 6년 전 사드 보복으로 몰아가기에는 논리가 달린다. 한국 기업의 중국 시장에 대한 오판과 제품 전략의 오판이 불러온 사고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스마트폰 세계 2위인 애플은 중국 시장점유율이 여전히 두 자릿수이고, 미국과 일본, 독일, 중국 자동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높아졌고 한국만 낮아졌기 때문이다.
경제는 사이클이다. 어떤 경기 사이클도 끝나지 않는 불황은 없다. 불황에 비관하고 있기보다는 불황의 끝을 준비하는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 2등 하면 망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이미 왔다. 그리고 미중의 기술 경쟁 시대에 한국은 미중이 서로 오라고 잡아당기는 반도체라는 꽃놀이패를 쥐었지만 오래가기 어렵다. 세계의 1, 2위가 맘먹고 덤비면 시간이 문제지, 한국을 넘어서는 것은 필연이다.
2등이 1등을 넘어서는 데는 파격이 필요하다. 중국은 반도체산업에 55조 원을 지원했고, 미국은 527억 달러의 지원을 한다. 미국은 투자액의 25%를 세액공제하고, 중국은 28㎚ 이하의 기술력을 가진 반도체 기업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인력 문제에 바로 12개 대학에 반도체학과를 지원하고 칭화대와 베이징대에 반도체대학을 설립해 인력 공급에 나섰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기술 때문에 역대 처음으로 한국의 새 대통령 취임 후 한국 대통령의 방미가 아닌 미국 대통령이 방한을 했고, 역대 대통령과 달리 휴전선이 아니라 반도체 공장으로 직행했다. 방한한 미국 재무장관은 환율이나 금융 협력은 뒷전이고 배터리 회사를 방문하는데도 한국의 정치는 반도체산업 육성 법안 통과를 미적거리고 있다. 필요 인력 양성은 대학의 이해관계에 막혀 있지만 이를 풀어 내는 산뜻한 정부의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 반도체는 정부의 경쟁력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이다. 경제 안보 시대 세계 1위, 3위 하는 반도체 회사가 초격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책과 지원을 머뭇거리면 한국은 미중의 기술 전략 경쟁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미국의 IRA법 통과에 한국의 전기차산업이 뒤통수를 맞았다. 신정부가 들어서 업무 파악이 늦었다고 하지만 공무원은 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그대로다. 한국은 사전에 이런 조치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법이 통과되고 나서야 WTO에 제소하고 미국 정부에 항의하고 난리법석이지만 이미 차는 지나갔다.
한국은 말과 구호에만 능하고 액션은 무디고 더디다. 무조건 K자 붙인다고 세계 1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엔터, 문화산업에서 세계 1위를 했다고 K자를 붙이지만, 다른 산업에도 K자를 붙이는 것은 그냥 정치적 레토릭이다. 반도체를 미국은 안보, 중국은 심장으로 격상시켰다. 한국은 이제 반도체를 재벌의 수익 사업으로 볼 것이 아니라 경제 전쟁 시대 안보 산업으로 봐야 한다,
지금 반도체가 미중 관계에서 한국을 지킬 최종 병기 활이다. 한국은 말로만 초격차를 떠들지 말고 미국과 중국을 제대로 벤치마킹해야 한다. 1등의 선발자 우위를 지키려면 추격자의 지원보다 더 센 파격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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