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타려도'의 제화시는 숙종의 인장 '신장'(宸章)이 찍혀 있는 숙종 어제(御製)다. 글씨는 어느 사자관(寫字官)이 써 넣었다. 왕에게 올리는 그림에는 화가의 낙관이 없는 것이 관례여서 이 그림도 그렇다. 비단 바탕의 공필(工筆) 채색 고사도(故事圖)인 이 그림의 화가에 대해서는 윤두서라는 주장, 숙종시대 화원이라는 주장 두 가지가 있다.
윤두서가 그렸다는 주장의 근거는 주인공의 얼굴이 윤두서의 '자화상'과 닮았다는 점, 오른쪽의 커다란 나무 옆에 희미하게 '공재'(恭齋) 인장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아니라는 주장은 1715년은 윤두서가 눈이 어두워져 글씨 쓰기도 힘든 지경이어서 정밀한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 관직에 대한 희망을 오래 전에 버렸기 때문에 이런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화가가 누구든 '나귀에서 떨어지는 진단'이라는 이 그림은 기법은 물론 주제에서부터 왕실의 취향에 잘 맞는다. 희이(希夷) 선생으로 불린 진단은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거쳐 송나라 초까지 살았던 도사(道士)다. 그가 당나귀를 타고 길을 가다 조광윤이 송을 세워 태조가 됐다는 소식을 듣자 기뻐서 박장대소하다 그만 나귀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진단타려도'는 조선왕실의 감상화로 18세기 어람용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궁중미술의 목적은 왕과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지배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찬양과 미화에 있다. 숙종은 권위가 부분적으로는 시각적 이미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잘 인식한 왕이었다.
절제된 구도와 정적인 묘사에 담채를 기조로 하면서 짙은 청록색과 백색을 곱게 사용한 조심스런 필치와 달리 인물은 과장된 동작과 익살스런 표정이다. 진단은 두 다리를 허우적대며 땅에 곤두박질치기 직전의 모습이고, 소년은 들고 있던 책 보따리를 내동댕이치고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치켜들고 달려간다. 진단의 이야기에 고급스러움과 해학을 절묘하게 섞었다. 숙종이 이 그림을 감상하고 지은 시는 이렇다.
희이하사홀안사(希夷何事忽鞍徙)/ 희이 선생 무슨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떨어졌나
비취비면별유희(非醉非眠別有喜)/ 취해서도 아니요 졸아서도 아니니 따로 기쁨이 있어서라네
협마징상진주출(夾馬徵祥眞主出)/ 협마영에 상서(祥瑞)가 드러나 진짜 왕이 나오니
종금천하가무리(從今天下可無悝)/ 이제부터 천하는 근심이 없으리라
세재(歲在) 을미(乙未) 중추(仲秋) 상완(上浣)/ 제(題) 을미년(1715년) 8월 상순에 쓰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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