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영찬의 새론새평] 법은 정치 발전의 엔진인가, 브레이크인가?

남영찬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

남영찬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
남영찬 법무법인 클라스 대표변호사

최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와 관련된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 논의가 뜨겁다. 정치의 사법화는 국가나 사회의 중요 정책을 정치가 아닌, 사법이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이 이슈는 헌법과의 관계에서 주로 제기되었다. 헌법과 정치는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 헌법이 존재한다면서 서울에서 세종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하도록 하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위헌으로 선언한 결정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조악한 법 논리에 근거한 판단으로 행정부와 입법부가 합의해 결정한 핵심 정책이 단 9명의 법률가에 의해 무력화된 사건'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당시 재판장이었던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은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재임 기간은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소회를 밝혔다.

최근에 '정치의 사법화' 논쟁에 불을 지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직무집행정지 등 4건의 가처분 사건은 이와는 결이 다르다. 자신의 귀책 사유로 인한 징계로 당 대표 직무 권한을 정지당한 이준석 전 대표가 정당 내부의 조직과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심판하여 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였다. 법원은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인용 결정을 하였다. 법원의 결정 요지는 국민의힘이 비상 상황에 있다고 볼 수 없음에도 당 대표의 법적인 지위를 박탈하려는 것은 정당의 민주적 내부 질서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찬반 논의가 분분하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찬반 의견을 제외하고 보면, '비대위를 설치한 절차는 합법이지만 그것이 민주적인 정당성에 어긋난다는 논증은 사법부의 월권적인 정치 개입'(허영 교수)이라는 취지의 견해가 우세하다.

정당은 국민과 국가의 중개자로서 '정치적 도관(導管)'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정당의 조직이나 운영은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고, 정당 내부 질서에 대한 규제는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특히 정당의 정치적인 의견이나 견해의 형성 및 그 내용, 정당 조직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부분은 정당의 정치적 활동에 직결되므로 이에 대한 규제는 더욱 신중하여야 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실종된 자리에서 싹튼다. 법원은 소송이나 신청이 제기되지 않으면, 스스로 특정 사안에 대한 심리와 판단을 할 수 없다. 누군가가 이를 판단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책임은 정치 문제를 법원으로 끌고 오는 정치인과 정치 실종을 초래한 정치권에 있다.

지난 9월 2일 퇴임한 김재형 전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입법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인데도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6년 임기 내내 보수나 진보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법적 이성에 대한 믿음' 하나에 지탱하여 '재판을 하고 판결문을 쓰는 데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고자 한 천생 판사였다. 그러한 퇴임 대법관이 우려할 정도로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법원과 정치권의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 협상으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대안이 고려된다. 그러나 법원의 재판에서는 그러한 요소가 기능할 공간이 없다. 법이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법원은 위헌·합헌, 위법·적법, 유효·무효라는 잣대로 판단한다. 이런 이분법적 속성 때문에 법원은 중간 영역을 택할 수 없고,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다. 일부 영역에서 법의 한계와 부조리는 여기에서 나온다.

'정치의 사법화'로 인한 부작용을 방지할 실효성 있는 방안은 역설적으로 '사법의 정치화'를 방지하는 데 있다. 우리 사법부는 전통적으로 정당 내부 문제에 대해서 절차적 합법성 판단에 치중하면서, 실체에 관한 판단에는 '사법 자제의 원칙'을 지켜왔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였다. 정치권이 정치의 사법화를 시도하더라도 법원은 심판의 경계를 획정함에 있어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정치적 정의를 법원이 독점하려 해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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