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들르던 술집 근처에 재밌는 곳이 있었다. 일종의 서예 교습소 같은 곳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유흥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서 더 눈길을 끄는 곳이기도 했다. 입구에는 붓글씨 외에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고 적어놓았는데, 그런 홍보 문구조차도 누런 한지 위에다 직접 붓글씨로 써서 붙여둔 점이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유흥가의 현란한 불빛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 글씨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서예를 배울 수 있는 곳답다고 해야 할까. 한데 그 가운데서도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는 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악필교정'이라는 말이었다. 손글씨가 못난 사람들을 위한 교습인 셈인데,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을 마주할 때마다 어쩐지 내 비밀스런 약점을 들킨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실제로도 종이 위에다 뭔가를 수기로 쓸 때마다 나는 매번 그 약점을 확인하곤 했다.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글을 타이핑으로 쳐서 그런지 안 그래도 못난 내 글씨가 갈수록 더 못나지고 있다는 걸. 글씨는 '마음의 거울'이라 했던가. 말마따나 내가 쓴 글씨들을 보면 가뜩이나 못난 놈이 마음까지 못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한데 '악필교정'이란 말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비단 그런 자격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악필교정'이라고 쓴 글씨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글씨가 '악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설마 했다. 글씨가 '악필'이 아니라, 내가 서예에 문외해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그런데 그렇게 봐도 거기 쓰인 다른 글씨들에 비해 유독 '악필교정'이라는 글씨의 형상이나 균형이 이상하단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예술이라는 게 대개 그렇듯, 제 아무리 문외한 사람이라도 정말로 좋다거나, 정말 별로다 하는 건 쉽게 판단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렇게도 생각해봤다. '악필'을 강조하기 위한 그 교습소만의 특별한 전략이 아닐까라고. '악필'을 '악필'로 승부하는, 일종의 충격요법 같은 방식 말이다. 한데 그렇게 본다 해도 그 전략이란 게 '충격'만 주고 정작 '요법'은 없는 방식과도 같았다. 그 글씨를 보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은, 과연 저렇게 글씨를 쓰는 사람한테 악필을 교정 받으면 나중에는 결국 어떤 글씨를 쓰게 될까라는, 불길한 우려였다.
그럼에도 '악필'로 쓴, 그 '악필교정'이라는 글씨는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그곳에서 교정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대신 언젠가부터 근처 술집을 들를 때면 그 글씨를 꼭 훑어보고 가는 이상한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뭐랄까. 사실 그건 유흥가의 불빛이든, 의심 가득한 나의 시선이든 그런 것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 '악필'의 당당함이 오히려 부러워서이기도 했다. '악필'도 '악필' 나름이라고. 그걸 못났다고 부끄러워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는 놈도 있었던 것이다. 글씨가 '마음의 거울'이라면, 그 '악필'이 비추는 거울에 비해 내 거울은 어쩐지 뭔가를 비추기보단 숨기기만 급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데, 어쩌면 그게 바로 그 교습소가 진짜로 의도한 '악필교정'의 효과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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