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 경제인] <5>송윤택 윙텍스 회장 "해보지 않고 안된다 하지말라"

섬유 60년 외길·패션섬유 전문기업으로 세계서 활약
군경 제복·유니폼 원단 개발 美 월마트 납품 제품 각광
한때 공장 직원 평균이 63세…中·인니에 경쟁력에서 밀려
기업들 처한 현실은 제각각, 주 52시간 제도 유연한 시행
국가·기업·근로자 모두 생존…후배들, 무엇이든 꼭 도전을!

송윤택 회장은 도전과 '하면 된다'는 정신을 역설하며 현장주의를 강조했다. 이무성 객원기자

낯선 듯 하지만, 사실 윙텍스는 우리에게 친숙한 기업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하는 회사 라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게 되는 경찰관 제복이나 군복, 모범운전기사 유니폼 등 대부분이 윙텍스의 고기능 원단으로 만들어졌다. 순간 순간 윙텍스와 부딪히며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이 산업화로 꿈틀거리던 지난 1965년 미광염색공업사로 출발한 윙텍스는 고품질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스판 원단과 합성섬유 생산 등 섬유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자랐다. 뿌리 깊은 전통과 탄탄한 기술력, '하면 된다'는 정신이 바탕이 됐다.

송윤택 윙텍스 회장은 도전 정신과 현장을 강조했다. 송 회장은 "직원들에게 늘 '해본 얘기를 하자'고 한다"며 "해봐야 이루고, 안 되더라도 문제점을 알아내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먼저 윙텍스에 대해 소개해 달라?

▶군‧경찰 제복이나 여러 단체의 유니폼 원단과 방탄복, 스포츠·아웃도어 의류에 사용되는 기능성 특수원단을 개발해 내수는 물론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 직접 생산, 납품하고 있다. 1996년 경영혁신을 위해 ㈜윤성텍스타일로 사명을 변경하고, 패션 전문브랜드 윙텍스, 화인에스를 런칭해 유럽, 미주, 동남아시아 등에 수출하고 있다.

디지털 경영시대에 발맞춰 업무시스템, 마케팅 효율성, 기업이미지 제고를 위해 상호와 상표를 일원화해 2018년에는 ㈜윙텍스, ㈜미광텍스타일로 사명을 변경하고 먼 안목으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미광염공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긴 역사다. 성장 노하우가 무언가?

▶1950년대, 아버님께서 군복 등을 가마솥으로 염색하셨다. 이후 저희 형님이 불을 떼 가면서 아버지에게 염색 기술을 배웠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인택 형님이 경북 경산에 미광염색공업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후 무역과 영업은 주로 제가 맡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60년 역사의 비결이라고 하면, 아버지부터 시작된 사업을 형님과 저, 제 아들까지 대를 이어서 가업으로 해온 게 아닐까. 한 길만 걸어왔기에 숙명이었으며 모든 것을 쏟아 왔기에 지금에 다다를 수 있었다고 믿는다.

-해외 진출은 어느 정도인가?

▶2018년 경산 미광 공장을 구조조정하고 베트남으로 나갔다. 국내 섬유 산업이 하락세를 걸었고, 인력난까지 겹쳐 공장을 제대로 운영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형님이 동의하셔서 베트남에 봉제공장을 설립했다. 그런데 베트남에도 코로나19가 덮쳐 애를 많이 먹었다. 인력 수급이 어려워지고, 인건비가 크게 올랐다. 처음 계획과 다르게 지금은 CMT(임가공)에 주력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미국 월마트와 계약하며 성과를 올렸다. 베트남 공장은 800명이 일하고 있고, 연 매출이 80억원 가량 된다. 미광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크지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 지금은 정말 잘한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시장에서 각광 받는 제품을 하나만 소개한다면?

▶단연 월마트에 납품하는 제품을 꼽을 수 있다. 트레이닝복을 시작으로 지금은 반바지와 롱바지, 우븐 종류의 제품을 우리가 모두 하고 있다. 월마트에서 베트남을 포함해 우리 공장을 모두 둘러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공장을 잘 지었느냐'고 물으며 놀라더라. 앞으로도 기술 개발에 힘써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

-한 눈 팔지 않고 섬유 외길을 뛰어왔다. 부친도 섬유업에 발을 담갔고, 아들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특별한 경영철학이 있다면?

▶현장 중심주의다. 사무실에 앉아 아무리 전화를 붙들고 있어봐야 되는 일 없다. 직접 현장으로 나가야 하고, 거래처를 찾아 관계자를 만나야 한다. 안 될 일도 사람의 눈을 보고 서로 공감하며 대화한다면 반드시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는 비즈니스의 바탕이 된다. 저는 늘 현장에서 답과 길을 찾았다. 수십 년간 외길을 달려온 동력은 바로 현장이었다.

염색으로 첫 발을 뗀 윙텍스는 약 60년만에 고품질의 원단을 자랑하는 패션 전문브랜드로 성장했다. 야간 감시장비 회피 효과와 내구성, 방수 등의 기능을 갖춘 군납용 특수 원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송윤택 회장. 이무성 객원기자

-섬유산업의 중심인 대구가 활력을 잃었다. 평생 몸담아온 입장에서 소회가 남다르겠다.

▶아, 곡(哭)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가장 큰 걱정은 이제 섬유업계에서 일할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한 때 우리 공장 직원들 평균 연령이 63세였다. 이 업계에 신규 인력이 씨가 말랐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아쉽게도 섬유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 밀리는 형국이다. 왜 경쟁력이 사라졌겠나. 우리나라에서 모든 것을 생산해야 경쟁력이 확보되는데 대부분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다. 해외 기업들이 우리에게 발주를 넣던 것도 이제 해외로 분산되면서 활력과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를 향해서도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산업 현장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 등으로 기업 활동을 옥죄고 있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데?

▶특히 주52시간 제도는 중소기업에 맞지 않는 정책이다. 기업이 처한 현실이 제 각각 인데 어떻게 한 가지 프레임에 정확히 끼워 맞추란 것인지 이해 안 된다. 요즘 임금을 체불하거나 과도한 근로 여건을 강요하는 곳이 있나. 기업의 경영환경에 맞게 유연한 근무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와 기업, 근로자가 모두 산다.

-대구경북 출신 후배 기업인들에게 하고 조언의 말을 한다면?

▶대구 경북 경제가 매우 어렵다. 과거 호황기를 누렸지만 이제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연구를 꾸준히 해야 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서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한다. 자신이 하는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궤도에 올랐다고 해서 노력을 멈춘다면 도태되고 만다. 힘을 내 꾸준히 전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미래 세대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들려 달라

▶한 마디로 도전정신이다. 누구는 해보지도 않은 채 안 된다고 먼저 말하기도 한다. 저는 그런 가치관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해본 얘기를 해야 한다. 무조건 몸으로 부딪혀 보고 경험해 봐야 성패를 알 수 있다. 직접 해보고 성공하면 너무나 값질 것이고, 실패했다면 경험을 발판 삼아 뒷날을 도모하지 않겠나. 직원들에게도 늘 하는 얘기가 해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한다. 해봐야 안 되는 이유라도 알텐 데… 젊은이들에게 꼭 무엇이든 도전해보라고 응원한다.

송윤택 회장. 이무성 객원기자

송윤택 회장은 누구?

송윤택 회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하나 둘이 아니다. 도전정신과 현장주의, 주경야독 등등.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은 한 때 대한민국의 무역을 짊어졌던 섬유가 사양산업화 된 뒤에도 윙텍스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구가하는 토대가 됐다. 쟁쟁한 섬유업체들이 기울은 반면 윙텍스는 현장주의와 남다른 기술력, 영업 제일주의로 발돋움해 패션 섬유 전문기업으로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는 "욕도 면전(面前)에서 하고, 먹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을 정도로 현장을 중요시한다. 1992년대에는 서울에 무역부를 내고 본격 영업전에 뛰어 들었다. 당시 선경, 갑을, 동국 같은 기라성 같은 기업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戰果)를 올렸다. 지금도 회의는 1주일에 1차례 뿐이다. 그 시간 있으면 연구하고, 영업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창의와 혁신의 가치 아래 활로를 개척해온 그는 경영대학원만 10곳을 다녔을 만큼 주경야독파다. 경제를 보다 깊이 알게 되면서 섬유 분야에서 요구되는 디테일에 더욱 강해졌고, 인적 네트워크가 강화돼 활동 반경을 넓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송 회장은 "회사는 하면 할수록 내 것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직원들에게 '너희들 잘하면 너희들 거다'라고 한다"고 털어놨다. 또 "사람은 죽어도 기업은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신은 노사 간 상생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생산 공장이 있는 베트남에 학교 2곳을 지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칠곡 출신으로 영남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재경 대구경북시도민회 상임부회장 직함에서 보듯 애향심이 남다르다. 지금도 고향을 자주 방문해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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