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명무실한 '스토킹처벌법'…"신고해도 대부분 별다른 조치 없어"

법 시행 이후 신고 건수는 전년보다 5배 늘었는데…10건 중 7건은 '무조치'
윤석열 대통령 "재발하지 않도록 스토킹방지법 보완 지시"
여성계 "신고 초기부터 강력한 조치해야 2차 피해 막아"…초기 대응·관리 인력 충원도 과제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16일 오전 고인을 추모하는 메시지들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스토킹 범죄로 여성 역무원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후약방문'식 스토킹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스토킹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추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여성계는 이보다 더욱 강력한 초기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에 들어갔지만 스토킹 신고 이후에도 피해자 보호 조치는 여전히 부실하다는 게 이유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1일부터 올해 7월까지 접수된 스토킹 신고 건수는 1천1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배 증가했다.

그러나 신고된 사례 가운데 서면 경고나 유치장 유치 등 '잠정 조치'가 이뤄진 사례는 265건(26.10%)에 그쳤고, 100m 이내 접근금지 등 '긴급 응급조치'가 내려진 경우도 84건(8.27%)에 불과했다.

신고 사례 10건 중 7건은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셈이다.

보호 시스템 부실 논란이 이어지자 정부도 칼을 빼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이러한 범죄가 발붙일 수 없게 하라"며 법무부에 '스토킹 방지법' 보완을 지시했다.

이에 법무부도 피해자 보호 미흡을 인정하며 스토킹 처벌법에 규정된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원석 검찰총장 역시 빈번하게 벌어지는 스토킹 범죄 대응을 위해 구속영장과 피해자·가해자 분리 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총장 취임 후 내놓은 '1호 지시'다.

그러나 여성계는 이와 더불어 강력한 초기 대응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범행 초기에 스토킹을 신고하면 경고 조치로 그치는 사례가 많은데, 이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 주변을 배회하다 언제든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여성의전화 관계자는 "현장 조치 후 가해자가 피해자 주변을 서성이다 2차 가해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 징후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초기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다. 과도할 정도로 구금 등 조치를 해야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될 경우 경찰의 인력 보강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충분한 피해자 보호 인력을 배치하지 않고는 신변 보호에 또 다른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성원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되면 모든 피해자에 대해 관리와 감독이 들어가야 하는데, 현재 경찰 인력으로 실효성있는 피해자 보호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반의사불벌죄 폐지와 더불어 피해자 모니터링, 상담 등 체계적인 관리감독 시스템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의사불벌죄: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할 경우 수사기관에서 기소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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