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마다 다르지만 기사의 첫 줄, '리드'(Lead)를 순도 높게 짜낸 문장이 간혹 보인다. 글 전체를 꿰뚫는 핵심이 한 문장에 드러난다. 첫 문장에 홀려 한 단락을 다 읽고, 결국 언제 이걸 다 읽었나 싶게 글 전체를 다 읽어 낸다. 육하원칙을 한 문장에 몰아넣어 난산한 복문(複文), 중의적 표현을 난삽하게 늘인 문장과 달리 청량감을 준다.
'짧고 굵게, 임팩트 있게'라는 구호는 광고업계에서 불문율이다. 단시간에 인상적인 메시지를 남겨야 상품이 각인되기 마련이다. 길면 수용자의 주의력이 분산된다. 1분이 안 되는 '쇼츠'가 대세로 떠오른 까닭이다. 길어도 강한 집중력을 유도해 '예술적 경지'라는 경탄을 끌어내는 경우가 있지만 '쓸고퀄'(쓸데없이 높은 퀄리티)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각종 직함이 열거된 명함을 받을 때와 비슷한 질감의 감정이지만, 지나친 부연(敷衍)도 존재감이 약하다는 증거로 읽힌다. 조선 27명의 왕 중에서 재위 당시 존호를 가장 많이 받은 이는 광해군이었다. 8음절 존호를 여섯 차례 받았다. '폐모살제'(廢母殺弟)라는 아킬레스건이 상존했기에 정당성을 강조한 것으로 사가는 풀이한다. 결과는 폐위였다. 존호와 존경심의 불일치다.
긴 아파트 이름도 조롱의 대상이다. 지하철역이 가깝다는 점도 녹이고, 숲이 근처에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브랜드명까지 덧붙인다. 특징을 다 담으려는 과욕이 빚어낸 참사다. 25음절 아파트 이름에 동, 호수까지 적어 택배 한번 보내려면 주소 적느라 식겁한다. 시공 능력 상위권 건설사의 브랜드라면 이름이 길 필요가 없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이미지 재고의 공신 중 하나는 '59초 쇼츠 영상'이다. 주요 공약을 간결하게 설명하니 과감해 보이는 효과를 줬다. 영상 말미에는 "좋아, 빠르게 가"로 매듭짓는다. 방향이 섰으니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는 것으로 지지자들은 풀이했다. 최근 대통령실 인사들이 대거 교체됐다. 처음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복잡기괴한 과제일수록 간결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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