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이제는 일 잘하는 정부를 보여줄 때가 됐다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지난 여름휴가 때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대통령실 취재기자였던 시절에도 못 가 봤던 청와대 관저가 궁금해서였다. 이명박(MB) 정부 당시 청와대는 매년 가을 출입기자 가족 초청 행사를 열어 경내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했지만 관저만큼은 예외였다.

아쉽게도 최고 권력의 상징이던 청와대에서 가장 은밀한 공간인 관저 내부는 여전히 입장 불가였다. 뜰에서 건물 안을 들여다보며 대통령들의 '비밀'을 떠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관저에서 받는 인상은 그래서 제각각이리라.

몇 해 동안 필자가 출퇴근했던 춘추관에는 대통령이 서던 연단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줄이 꽤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만 포토존을 제외한 사무 공간들은 잡동사니를 쌓아 두는 창고로 방치되고 있어 씁쓸했다. 개방 이후 달라진 청와대 위상이 실감 났다.

신축 예산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영빈관은 땡볕 더위 탓에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돌아오는 길에 문득 길재 선생의 '회고가'(懷古歌)가 생각났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는 그 시조 말이다. 시구(詩句)와 정반대인 현실이 답답했다.

사실 'MB 정부 2기'란 비판처럼 새 정부는 MB 사람들을 중용하다 보니 행태가 닮았다. '브라운백 미팅'(MB 정부) '도어스테핑'(윤석열 정부) 등 낯선 용어 뒤에 내놓는 어설픈 정책들, '핵관' '선거 일등 공신'들의 패거리 정치…. '순장조'도 여전히 있으려나?

특히 대북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라 아쉽다.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에 밝힌 '담대한 구상'을 "담대한 망상"이라고 대놓고 조롱한 데 이어 보란 듯이 선제 핵 공격 가능성을 열어 놓은 법령을 채택했다. 우리 측의 이산가족 문제 회담 제안에도 아무 반응이 없다.

통일부의 한 지인은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너무 관심이 많았던 반면 현 정부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이 18일 공개된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전임 정권의 외교 정책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일 잘하는 정부'를 내세우며 민생과 외교·안보를 빈틈없이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외교 시험대가 될 두 번째 해외 순방에서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국민들의 관심은 동행하는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 더 쏠리는 분위기다.

양자 정상회담부터 불안한 탓이다. 정부는 한일 회담을 갖는다고 발표했지만 일본에선 결정된 게 없다거나 합의가 없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발표부터 한 게 아닌지, 만나더라도 짧은 시간 담소를 나누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MB 시절에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크게 궁지에 몰린 적이 있다. 천안함 사건 직후였던 2010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정상회담 사흘 뒤 이뤄진 북한 김정일 위원장 방중 사실을 사전에 전혀 귀띔받지 못한 사건이다. 외교 현실은 그만큼 냉엄하다.

무엇보다 한미 정상회담이 자칫 '빈손 외교'가 될까 봐 걱정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 문제에서 성과를 거두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인데,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국에 예외를 보장해 주긴 쉽지 않아서다.

만에 하나 기조연설로 유엔 무대에 데뷔했다는 '자랑거리'만 들고 돌아온다면 국민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 정부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만 커질 것이다. 전임 정부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눈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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