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판 한 장 깔 돈이 없어요’ 경북 포항 태풍 이재민들의 눈물

재난지원금 최대 200만원…주택 청소에도 턱없이 부족
9천여가구 침수 피해. 주택 복구 100억원 필요

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네리에서 A(90) 씨가 태풍
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네리에서 A(90) 씨가 태풍 '힌남노'로 엉망이 된 집을 치우고 있다. 신동우기자

"이번 폭우로 진흙이 밀려들어 벽지와 장판 다 뜯어내고 소중한 살림살이도 모두 버렸어요. 재난지원금으로는 도배조차 못해요."

18일 오전 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내리의 한 마을. 진흙밭으로 변해버린 집을 치우던 A(90) 씨는 '들이닥친 큰물에 현관문조차 잠기지 않는 집에서 맨바닥에 담요만 덮고 잔다'며 한 숨을 쉬었다.

태풍 '힌남노'로 1시간당 100㎜ 이상의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진 포항 대송면‧오천읍‧동해면‧구룡포읍‧장기면 등 남구지역은 성인 남성의 어깨까지 물이 들이차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포항시 조사결과 16일 현재 9천432가구의 주택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대송면 제내리의 경우 폭우로 전체 1천135가구(2천1명) 중 90% 이상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인근 마을도 100가구 정도가 침수되는 등 대송면에서만 1천가구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철강공단과 인접한 대송면 제내리는 곳곳에 대형 송전 철탑이 설치돼 있는 등 열악한 주거 조건으로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거주인구 중 30%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층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번 태풍은 저지대나 하천 인근 등 취약계층에 더 많은 상흔을 남겼다. 더러운 오수에 집 안이 모두 쓸려나간 탓에 도배와 장판을 해야 다시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겨우 200만원 남짓의 재난지원금으로는 도배는커녕 살림살이를 재장만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행정안전부의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비용 부담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재난지원금은 가구당 200만원이 상한선이다. 포항에는 이번 태풍에 따른 주택침수 복구에만 10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A씨는 "집이 다 젖어 말리려면 며칠간 보일러를 틀어야 한다. 그런데 보일러가 침수돼 고장 났다. 수리비용이며 난방비 부담 등 모든 것이 너무 힘들다. 재난지원금을 제발 이재민들의 실정에 맞게 현실화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포항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전국 각지 기업과 단체, 개인들로부터 성금이 답지하고 있지만(16일 현재 108여 개인‧단체 참여, 총 122억원) 이마저도 이재민들에게 돌아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재해구호협회에 모인 성금이 모두 포항지역에 투입되는 것도 아니고, 관련법에 따라 상당한 시일과 절차가 필요해 한 달 가량은 더 필요할 전망이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재난지원금의 규모와 지원대상 확대 등 특단의 대책 마련을 꾸준히 정부에 건의하고 있지만, 규정을 변경해야 하기에 당장 이번 태풍 피해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에 포항시에서는 범국가적인 지원뿐 아니라 장판과 벽지 기부, 도배 재능기부 등 전국적인 온정의 손길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포항시 관계자는 "또다른 태풍의 소식이 이어지고 일교차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피해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는 한시 빨리 도배와 장판 설치 등 주택 복구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전례 없는 피해로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피해 주민들을 위해 뜻 있는 분들의 따뜻한 온정과 적극적인 봉사 참여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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