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으로 정국이 어수선하다. '바이든'과 '날리면'이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vs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관련 첫 보도를 접했을 때 '바이든'으로 들렸다. 지금도 '바이든'에 가깝게 들린다. '바이든'이라고 표기한 방송사들의 자막 각인 효과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문제의 발언 이후 15시간 만에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다시 들어보니 '날리면'으로도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내 귀가 팔랑귀인가?
'바이든'과 '날리면'은 자·모음 구성상 헷갈릴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낱말이다. 그런데도 '바이든'으로도, '날리면'으로도 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생경하다. 국민들은 문제의 음성 파일을 반복해 들으면서 청력 테스트를 하고 있다. 주변 소음을 컴퓨터 작업으로 제거하고 윤 대통령 목소리만 부각시킨 음성 파일도 돌아다닌다.
사실, 감각기관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인간의 뇌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한다. 착시 그림들을 보라. 직선인데 굽어져 보이고 회색이 흰색으로도, 검은색으로도 보인다. 세 개의 점(이모티콘)만 찍어놔도 인간은 사람 표정으로 해석한다.
인간은 보는 것을 믿는 존재가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 존재라고 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바이든'으로 들리면 좌파, '날리면'으로 들리면 우파라는 공식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이상한 프레임 전쟁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말이 있다.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문제의 대통령 발언에서 조사 하나만 바꿔 보자. '바이든이'를 '바이든에'로. 그러면 이렇게 된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에 쪽팔려서 어떡하나?"
굳이 '날리면'이라는 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에서 1억 달러 기부금을 내기로 바이든에게 약속을 했는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승인해 주지 않으면 윤 대통령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바이든에'라는 발음이 주변 소음 때문에 '바이든이'로 들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안을 볼 필요가 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대통령실의 초기 대응이 아주 미숙했다. 처음에 대통령실은 '사적 대화'라고 해명했다. 미 의회와 바이든에 대한 뒷담화를 인정했다고 해석될 여지를 줬다. 국내 언론 보도로 촉발된 논란은 외신을 타고 번졌다. 미국 대통령과 미국 의회에 비속어를 쓰는 부정적 이미지가 윤 대통령에게 생겼다. 뒤늦게 15시간이 지난 뒤 '날리면'이라는 해명를 내놨다. 논란을 가라앉히기보다 기름을 부었다.
더 이상의 논란은 국익 차원에서 좋을 게 없다. 뿌린 자가 거둔다고 했다. 단초를 제공한 것은 대통령이니 풀어야 할 사람도 대통령이다. 거두절미하고 대한민국 야당 국회의원들을 가리켜 '이 XX들'이라고 표현했다면 부적절한 발언이다. 정치 초년생인 윤 대통령이 국회 등 정치권을 평소에 어떻게 생각했으면 저런 발언이 무심결에 나왔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국민과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야당도 이 문제를 더 이상 정쟁화시키지 않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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