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스가치없다"대통령회견 모른척

17일밤 8시(한국시간 18일 아침9시) 미국백악관 이스트 룸에서는 클린턴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취임후 황금시간대에 갖는 첫 회견이고 주요 경제정책이 무더기로 의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때라 국민적 관심이 컸다.기자도 특별히 질문을 할 사항은 없었지만 클린턴이 한국방문을 보름여 앞둔시점이라 4시간전에 미리 좌석예약을 한후 참석을 했다.이날따라 짙은 곤색양복에 말끔히 화장까지 한 클린턴은 20여분간 준비해온차트를 넘겨가며 소말리아사태, 국내 경제문제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했다.이어 40여분에 걸쳐 19명의 기자들로부터 갖가지 질문을 받고 시종 여유있게 대답했다.

회견이 끝난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지만 참석한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클린턴의 치밀한 사전준비와 성실한 답변으로 이날 회견이 만족할만했다는 평가였다. 기자도 클린턴이 특유의 표정인 입술을 수차례나 깨무는 걸 보면서 "앞으로 인기가 좀 올라가겠구나"하는 성급한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1시간뒤 집에 돌아와 TV를 켠 기자는 쓴웃음을 지울수가 없었다.

클린턴이 취임후 최초로 분장사까지 동원, 만반의 준비끝에 행한 이날의 기자회견을 미국의 주요TV채널인 ABC, CBS등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NBC방송은 25분간 생중계를 하다가 스포츠중계를 이유로 도중에 그만두었다는 뉴스였다. 그시간에 CBS는 3류가수인 클린턴동생등이 출연하는 쇼를 중계했고ABC는 정규프로를 방송했다. 실제 생중계를 한 방송은 의회전문채널인 워싱턴시내용 C-SPAN, 뉴스 전문채널인 CNN등 두개의 유선방송뿐이었다는 것이었다.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아나운서는 미국 대통령의 주요기자회견에서 보기드문 해프닝이라고 흥분했다.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보고받은 클린턴은 화가 치밀어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다만 생중계를 해준 방송사에 감사하고 나는 그들(생중계를 해준 회사)에대해 보답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린턴의 공보수석 조지 스테파노폴리스는 훨씬 솔직했다. "너무나 실망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기자회견은 자주 할것이다"고 울먹이듯 했다. 겨우 31세에 백악관대변인을 맡아 최근까지출입기자들을 자기방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는등 목에 힘을 주던 그와는 딴판이었다.

이에대해 3개 방송사 대변인들은 "어디까지나 뉴스 밸류상의 문제다. 우리는회견중에도 주요한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생중계를할 만반의 준비를 했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라고 무턱대고 생중계를 할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또한번 클린턴을 서운하게 했다.물론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15일 ABC방송 부릿 흄기자가 클린턴에게 "대법원판사 지명이 오락가락한것 아니냐"고 질문,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한 대통령이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당신은 지금 막 설명을 듣고도 그따위 질문밖에 못하는가"고 회견을 그만두고 나가버린 해프닝이 있었기 때문에 백악관으로서는 화해를 위한 다목적 회견이었다.그러나 이날 언론의 푸대접으로 클린턴은 취임1백일 이후 계속되고 있는 언론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셈이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자기살을 에는 과잉경쟁을 버리지 못하고있는 한국 언론에서는 흔히 있어온 최근 중앙일보의 권영해 국방장관 관련,어줍잖은 오보와 그로인한 한 기자의 구속사건이 외신을 통해 미국에서도 화제가 되고있다.

미국기자들은 한국정부의 언론에 대한 화풀이요 길들이기라는 멋진 분석을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 정기자 구속사건에 대해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오보라면 민사적으로 보상을 요구해야지 왜 형사책임을 지우는가. 그 기자가 국방장관의 명예를 훼손시키기위한 고의성이 있었는가"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고의성이 있어도 배상을 요구하지 형사처벌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서울특파원도 지냈던 한 일본기자는 "한국특파원들이 문민정부출범했다고 자랑하더니 앞으로 수없이 감옥에 가야겠다"고 뼈있는 농담을 한다.정부가 {길을 좀 들여야 되겠다}고 생각하게끔 때묻은 우리언론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도 든다. 싸구려소파하나 없어 3류극장식의자에 앉아 종일을 보내면서도 백악관으로부터 코피 한잔, 공짜 전화 한통 제공받지 않고 대통령의 외국나들이때도 비행기, 호텔, 식사등 일체의 편의제공을 받지 않는 미국기자들을 보면서 클린턴도 먼지가 안나니 기자들을 털수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오는 7월 클린턴의 한국방문때도 백악관기자들은 1인당 8천달러씩이나 회사돈을 들여 출장을 간다.

취임후 줄곧 언론에 겁주는 말을 해온 김영삼대통령에 대해 언론이 목소리를높일수 있는 길은 곧 기자들이 청와대를 비롯한 취재원으로부터 쓴 코피 한잔 얻어먹지 않고 일신 출세를 위한 일부 타락된 기자들의 필기노릇 청산하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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