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카마스', 이것은 '네버 어게인' 즉 '이제는 그만'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이다. 오랫동안 군사독재의 인권탄압과 부정부패에 시달렸던 남미국가들이80년대에 들어와 민주화되면서 널리 사용된 말이다. 과거청산의 강한 의지가담긴 말이기도 하다.그러나 과거청산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독재가 장기화되어 유산이 심대할수록 청산은 어려움에 부딪친다. 김영삼정부도 이점에서 오늘날 기로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현정부의 탄생배경과 과정을 생각할때, 김대통령의 과감한 군부숙정과사정개혁은 예상을 뛰어넘은 것으로서 국민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률곡사업'에 대한 전례없는 특감의지등을 보면서 우리는 오늘날 남미, 동구등 도처에서 과거청산과 정의확립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에게잘하면 어떤 모델을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그러나 다른 한편 시간이 지나면서 문민정부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성역없는 사정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관심이 정권비리의 핵심에 접근하면 서둘러 사정을 종결시키고 만다. 정치보복의 인상을 주는 수사결과도 문제다. '광주사태'와 같이 군사독재하의 엄청난 인권유린에대해서는 진실규명을 뒤로 미루면서 오직 뇌물수수와 같은 비리의 차원에서과거 집권세력을 응징하려는 것도 한계라면 한계라 하겠다.비리핵심 철저히 규명-김대통령이 근래 제시한 '12.12'와 '5.16'에 대한 성격규정만 해도 그렇다. 이것은 다같이 정의의 편에 서서 역사의 왜곡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담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에 필수적인 엄정하고 객관적인 진실규명작업을 훗날 역사의 과제로 넘기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실체보다이미지와 스타일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정치 패턴의 모호성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과거청산과 화해의 두마리 토끼를 역사적 진실규명으로 얻으려 했던 다른 나라들의 경험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례는 많지만 특히 아르헨티나, 칠레, 그리고 통일독일이 관심을 끈다.잘 알려진 것처럼 아르헨티나 알폰신 대통령은 1983년 12월 문민대통령으로취임하면서 곧장 '실종자 진상 조사위원회'를 설치,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을엄밀히 조사하게 했다. 9개월의 조사결과가 바로 '눈카마스'라는 보고서다.한편 브라질에서는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시민운동단체의 주도로 '눈카마스'라는 보고서가 1985년 출간되었다. 아무튼 이 보고서에 의해 알폰신 대통령은 수천명 피해자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문민시대의 새로운 기강을 확립할수 있었다.
군부가 아직도 병권을 독점하고 있고 피노체트장군의 영향력이 막강한 칠레에서조차 아일윈대통령은 1990년 3월 취임한 이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위원회'를 설치했다. 60여명의 전문가가 9개월의 조사끝에 1천8백쪽의 방대한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군사정권에 의한 인권탄압과 부패가 얼마나 극심했던가가 백일하에드러났지만 관련자의 형사처벌에 대해서는 모두가 매우 신중했던 것이 특징이다. 진실은 밝히되 처벌보다는 화해를 우선하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동독비밀경찰의 행태가 큰 쟁점으로 떠오른 통일독일의 상황도 유사하다. 작년3월 독일 의회는 모든 정당의 참여하에 16명의 국회의원과 11명의 시민대표로특별위원회를 구성, 내년까지 동독정권에 의한 인권유린과 부정부패의 실태를 상세히 조사토록 했다.
한점 의혹도 없이-이런 추세에 비추어 볼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모호한것처럼 보인다. 정부의 사정작업은 계속되고 있지만 결연한 청산의지가 갈수록 약화되는 것 같다. 청산은 커녕 성장위주 경제정책에서 보듯이 재벌과 적당히 타협하는 방향으로 가는 면도 있다. 청산도 화합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이 많은 의혹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사실 '고통분담'은 대화합을 전제한 것인데 이를 위한 일관된 원칙과 철학 및 방법론이 없는 탓으로 기득권층은 기득권층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오늘날 이에 반발하는 징후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눈카마스'의 정신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정신으로 우리가 새로운 발전모델을 세계에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방향감각이 흐려져 화해도, 협력도 점차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