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제헌의원은 제헌의원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역대 어느 국회보다훌륭한 국회였고 의원 저마다 선공후사를 철칙으로 생각한 정치를 해나갔다고도 했다.특히 우리나라 헌법을 최초로 제정하는 임무를 부여 받아 일익을 담당했던그로서는 그같은 헌법이 통치자의 정략에 따라 이리저리 개정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루 말할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소회를 피력했다.그는 또 후배정치인들에게는 항상 정직, 근면할것과 국정운영의 바람직한 정책대안자로서의 연구활동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인기위주의 정치행각도 지양해야할것이라고 조언했다.
인기위주정치 지양을-17일이면 45주년 제헌절을 맞게 됩니다. 제헌의원으로서 남다른 감회가 있을것 같은데요.
*해마다 느끼는거지만 모두 2백10명의 제헌의원들이 모여 건강한 얼굴로 소담도 하고 하던 일들이 부지부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이제 10명내외만이 남아기념식을 치르노라면 뭔가 마음이 아프고|벌써 세월이 이렇게 지났구나 싶어마음이 어두울때가 있지요.
-제헌의원중 생존해 계시는 분은 모두 13명으로 알고 있는데요. 가장 고령이신 분은 누구세요.
*안준상씨지요. 경남 의녕출신인데 지금 97세지요. 그 다음이 초대 내무부장관도 하고 63년엔 공화당의장도 지내신 윤치영씨고요. 대구경북출신 제헌의원으로는 제가 유일한 생존자예요.
-29세때 제헌의원으로 당선되셨는데 당시 지역내에서는 최연소의원 아니셨습니까.
*아니었어요. 6.25사변때 납북당했습니다만 배중혁씨라고 당시 28세로 당선된 사람이 있었지요.
해방후 육영사업-48년 5.10선거 전만 하더라도 교직에 몸담고 계셨는데 어떻게 정치쪽으로 방향을 돌리셨어요.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십니까.*4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는 일제의 학병징집을 피하기 위해 중국 금주에서4년가량 머물다 해방이 되던 45년11월에 귀국을 했지요. 그 이후 저는 우리고향에다 과거에는 없었던 좋은 중고등학교를 설립해 우리의 교육진흥에 나름대로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일념에 차 이같은 계획들을 하나하나 진행시켜 나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48년에 UN이 남한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하라는 결의가 있었고 이에따라 고향에서도 선거바람이 일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 지역의 뜻있는 유지들이 나보고 나서 보라고 적극 추천을 해요. 당시 입후보자격을 위해선 2백인의 추천서명이 있어야 했는데 이같은 등록절차도 마쳐주고요. 그들은 당시 고향에 {사각모자}쓴 지식인도 드문데다 당시 극심하던 좌우익사상문제에도 개의치 않고 의욕적으로 육영사업에 매진하는 내가 고향을 대표할 적임자라고판단했던것 같아요.
-당시 국민들의 정치참여 의식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해방후 새로운 정치체제하에 처음 실시된 선거니만큼 뭔가 어리둥절했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비록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헌법을 만들고 하는 일들이 어떤 일인지는 잘알지못했지만 이같은 일들이 자주독립국가를 만들기위한 일련의 과정이라는 생각들로 의욕에 차있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국민.관공서 오염 안돼-당시 선거는 양상이 어땠습니까. 부정, 탈법시비는없었습니까.
*역대 선거중 가장 공명정대한 선거였어요.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전혀 오염되지않은 상태였거든요. 관공서도 오염되지않았고요. 이때문에 선거구민들은 자유롭게 오직 {우리고향을 위해서는 누구를 뽑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냐}는 생각에만 몰두했어요.
-재임당시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라면.
*제헌의원들도 당시 상당한 특권계층이었어요. 그때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적산도 많았고 또 신생국가건립과정에서 많은 이권이 생성되는 단계였지만 우리 제헌의원들은 정말 깨끗하게 해나갔습니다. 여기저기서 뻗쳐오는 유혹의손길도 많았지만 국가기초작업을 수행한다는 사명감에 차 일체의 부조리와 부합리에 눈돌리지 않았지요.
일례를 든다면 당시 의원중 한사람이 미군정거 5대를 불하받기로 했다는 소문이 나돈일이 있는데 의원들이 그를 찾아가 고 선포해 중지시킨 일조차 있습니다. 의원이라면 어느정도특권을 누린다는 요즘의 {상식}에 비춘다면 좀처럼 상상키도 어려운 일이지요.
-최근 열린 임시국회본회의에서 동향인 민자당의 반형식의원이 민주당측과거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만 당시 제헌의회에서는 그같은 일이 없었습니까.
권총들고 다툰 일도-있었지요. 당시는 특히 좌우익갈등이 심각할때였잖아요.국회에서도 그같은 사상문제로 심지어는 호신용 권총을 들고 다투는 일도있었지요.
-문제되는 사안은 다릅니다만 당시에 비하면 차라리 몸싸움이 훨씬 {양반}인셈이군요. (웃음) 제헌의원으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헌법을 마련하는 작업에참가하셨는데요, 지금까지 수차례 헌법개정이 이루어졌고 아예 헌정중단사태도 있고 했는데 이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세계 어느나라라도 헌법은 다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 제헌국회가 만든 헌법이 최선,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권자가 임의대로 헌법을 개정하곤했지만 이는 한 정파를 두둔하기 위한 개선이 아닌 개악이었고 전혀 잘된 것이 아니었어요. 그들이 그럴때마다 제헌의원으로서 고 되뇌이곤 했지요.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중 가장 치세를 잘 한 대통령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현재의 김영삼대통령은 아직 두고 평가해야 할 일이지만 박정희전대통령만큼 잘 해나간 분은 없다고 봐요. 우리가 현재 이정도라도 사는 기틀을 마련한분이 그분 아닙니까. 일꾼이었지요. 단점은 주색이 좀 심한 편이었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악용했어요.
-당시의 정치인들과 요즘의 정치인들을 비교해 보신다면.
*제헌의원들은 의원마다 국가관, 사회관이 분명하고 자주독립, 애국애족의정신이 투철했습니다. {선공후사}의 정신이 거의 생활철학처럼 박혀 있었어요.요즘의 정치인들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꾸만 이런 정신들이 흐려져 가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타까울때가 많아요.
-요즘 공직자들의 재산 등록이 한창입니다만 공직자들의 재산공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식행위에 불과한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순진한 국민들을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으로 속이는 절차로 이용해서는 안될텐데|.-오랜시간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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