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숲속 떨어져 불행중 다행

1백10명을 태운 여객기는 세동강으로 찢어져 산자락에 나뒹굴어져 있었다.살이 찢기고 피가 튀고 숲속 여기저기에 [살려달라]는 비명과 신음소리. 사망자와 부상자들은 짓이겨진 기체조각조각에 깔렸거나 사고순간 튕겨나와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대로 야산중턱에 곤두박질친탓인지 사망자 대부분은 기체앞부분에서 안전벨트를 맨채 또는 널브러져 있었으며 생존자 대부분은 뒷부분에서 구사일생했다.

인근마을주민 정한길씨(77.전남해남군화원면마산리513)는 [집앞마당에 서있는데 날아가던 비행기가 갑자기 {꽝}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전하고 [사고발생 1시간30분쯤 얼굴이 피투성이인 탑승객 김현식씨(21)가 찾아와 비행기가 추락했다며 빨리 산에 올라가 다른 사람을 구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이날 맨처음 구조작업에 나선 이동네 정한철씨(72)는 [마을주민30여명과 현장에 도착해보니 산산조각이 난 비행기몸통부근에서 20여m떨어진 곳에 4세.5세돼보이는 여자어린이 2명이 숲속에 쳐박혀있는 것을 구조했다고 말했다.사고소식을 맨처음 마을에 알린 김씨는 [비가 내려 활주로가 잘 보이지않으니 5분뒤 착륙하겠다는 기장의 안내방송후에도 한동안 착륙하겠다는 소식이없어 초조해하는 순간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 갑자기 솟구치는 것 같더니 {꽝}하는 충격음과 함께 추락했다]고 전했다.

여승무원 박진아양(23)은 [기장이 폭우로 목포에 착륙이 어려우나 다시한번시도해보겠다]고 말한뒤 곧 {꽝}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잃었으나 추락후정신을 차려 뒷문을 열고 나와 2시간가량 산속을 헤매다 주민들에게 발견됐다고 했다.

이번 아시아나기 사고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특기해야할 사항은 천만다행으로생존자가 많다는 점이다.

불행중 다행으로 44명의 인명이 살아남게 된것은 추락현장이 야산의 숲속이었고 연료탱크가 폭발하지 않은데 있었던 것 같다.

전문가들은 당시 기상조건으로 보아 폭우가 쏟아지는 등 습도가 높아 폭발을일으키지 않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참사의 와중에서도 생존자가 많아 그중 일부가 제발로 걸어나와 수 km나 떨어진 마을까지 찾아가 신고까지 했는데 이는 보기 드문 일이다. 또한 이번 사고는 국내에서 일어난 여객기 사고로서는 최대의 비극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기록을 보면 80년11월19일 승객 2백6명을 태운 KAL기 점보여객기가 김포공항활주로에 동체 착륙, 15명이 사망한 것이 가장 큰 사고로 돼있다.물론 우리나라 영공을 벗어난 해외에서의 사고는 이보다 큰 대형 참사가 세차례나 있었다.

83년의 구 소련 공군기에 의한 KAL기 피격 (2백69명 사망), 87년 김현희등북한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KAL기 폭파사건 (1백15명 사망), 그리고 89년의KAL기 트리폴리 추락사고 (72명 사망)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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