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룡문의 전설**등룡문이란 말이 있다. 입신출세와 연결되는 어려운 관문을 일컬음에 우리가자주 쓰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에는 이웃나라 중국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본래 룡문은 중국의 황하 상류에 있는 협곡의 이름이다. 이 협곡의 급류는여울이 거칠고 가파르기로 유명해서 큰 잉어라 할지라도 좀처럼 거슬러 오르기가 수월치않다. 그러나 천신만고끝에 이 급류를 거슬러 오르기만하면 잉어는 룡으로 변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연유되어 모든 고초와 난관을 극복하고 입신출세의 관문을 통과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바로 등룡문이란 말로표현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등룡문이라면, 고려의 광종7년 중국후주사람 쌍기가 고려에 귀화하면서 가르쳐준 과거제도는 그 이래로 조선시대까지 인재를 등용하는 출중한 제도로 일컬어져왔다. 지벌이 없는 한미한 집안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과거에만 합격하면 잉어가 용이되듯 일시에 발천을누리는 행운을 잡았다. 출세의 길은 오직 과거에 응시해서 벼슬자리를 얻는길밖에 없었으므로 팔도의 선비명색들이라면 필경 이 응시경쟁에 뛰어들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시간이 흘러가면서 과장에서 대작을 전문으로 해주는 거벽과 대필을 전문으로 하는 서수들에 의해서 차작차필이 된 과문이 거수(최우등)로 뽑히는 예도 없지 아니하였고 과거응시에 필요한 문구를잘게써서 모은 사집이란 수고에 의해 컨닝이 자행되기도 하였다. 과장의 폐단은 극심하였다.
**과거에도 대작.대필이**
그래서 다산 정야용은 {부잣집 자식이 글자 한자도 배우지 않고 글을 사들이고 글씨를 사고 뇌물을 바쳐서 합격하게 되는 사례가 그 태반을 차지하게 되는데 나라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길이 오직 이 방도밖에 있을 수 없으니 어찌한심하지 않은가?}라고 개탄하고 있다.
등룡문과 반대되는 말로 점액이란 말이 있다. 천행으로 룡문의 협곡을 헤치고 올라간 잉어는 용이 되지만 그곳에서 좌절한 잉어는 이마에 점이 찍혀서하류로 떠내려가야하는 처연한 신세됨을 말한다. 그러나 이마에 낙오자의 점이 찍히는 수모뿐만아니라 이마가 부서져 피칠갑이 되는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인정을 써서 명예와 벼슬을 사야했던 조선시대의 악습을 오늘에까지 답습해야 한다는 일에 구역질이 날 정도이다. 오늘날에도 시장바닥에서 횡행하는 야바위나 들치기, 날치기, 소매치기란 것도 알고보면 조선시대부터 있어왔던 사회악이었다.
**뿌리깊은 사회악**
잘못된 과거를 고치고 버리자는 마당에 조선시대과장에서나 창궐하였던 차작대필이 버젓이 횡행한다면 이것은 개탄의 심정을 넘어 아연할 따름이 아닌가.더욱이나 선비정신을 계승하고 그것을 목숨처럼 받들어야할 서예계에서 이런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차라리 난전바닥에서 벌어지고있는들치기, 날치기의 사기와 조금도 다를바가 없는 일이다. 이런 치욕적인 사기극은 없어져야 한다.
지난달 안동에 살적에 뵈었던 한 서예가를 필자는 기억한다. 아침 출근길에그분이 살고있던 집을 방문하노라면 그 분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꼿꼿한 자세로 글쓰기에 몰두해있곤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서야 깨닫게된 일이었지만 그분은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난밤부터 한잠도 잠자리에 든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엄동설한에 그분의 방은 얼음장같은 냉골이었고 부엌연탄아궁이에는 연탄조차 들어있지 않았다. 연탄을 사서 군불을 지필만한 형편이 안되어서가 아니라,잠을 자지않고 글씨 쓰기에만 몰두하기 위해 일부러 군불을 지피지않고 구들을 냉골로 둔 것이었다. 그분의 냉골작전은 그해 엄동설한 내내 계속되었던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의 이름이 더럽혀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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