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선중기 양식...흥자형 종택

경북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자리잡고 있는 태고정(보물 제554호)은 사육신 박팽년의 유복손 박일산이 창건한 조선 중기 양식을 잘 지닌 정자이다. 당시는정각 북편에 사당인 절의묘가 있었고, 서남으로 99칸 종택이 있었다고 한다.종택은 18세기 말 종손이 충주로 이주한 후 차츰 퇴락해버렸으나 {태고정기}에는 규모와 모습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지난 71년부터 사육신 유적정화사업이 펼쳐지면서 태고정 중수에 이어 건립된 숭정사(사육신을 모신 사당)의정문인 삼문 남쪽에 홍살문이 세워졌고, 하마비가 있어 절도사 이하의 신분은 모두 걸어들어와야 했다.{흥}자형으로 배치됐던 종택은 안채 점화루 태고정 피서용누각 문서보관방행랑채 곳간등으로 지어졌다. 임란이 터진 지 한달이 채 안돼 왜적들이 종택에 불을 질러 원래 사당이던 절의묘, 태고정 일부만 남고 모두 불타 없어졌다.왜적들이 사당과 태고정에 불을 지르자 별안간 뇌성벽력이 치고, 폭우가 쏟아져 불길을 꺼 버렸으며, 사당 기둥을 내리찍던 왜적들은 기둥 대신 제 발등만 찍어내렸다고 전해진다. 광해군 6년(1614)에 박일산의 증손 총관공 충후가중건하였으며 안평대군이 쓴 {일시누}라는 현판이 걸려있다.6간으로 된 태고정은 남향으로 대청이 동쪽에, 온돌방과 협실, 주방이 서쪽에 배치돼 있다. 동쪽은 부용난간을 설치하고 문호없이 개방해 놓았다. 온돌방은 대청 칸막이 앞쪽으로 분합띠살문을, 뒤쪽으로는 외짝 여닫이띠살문을달았다. 태고정은 일반적인 별당 형태이나 단순한 아궁이만이 아닌 부엌을 한쪽 구석에 둔 것은 흔치 않은 보기이며, 나당과는 별개의 살림 기능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지붕은 대청쪽은 팔작지붕, 방부분은 박공지붕에 확장된 부분은 부섭지붕이다. 한 집의 지붕이 이처럼 다른 것은 살림집에 딸린 정자건물에 종종 나타나 월성 독낙당의 지붕에서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고정} {일시누}등의 현판 외에 대청안에 제명록, 명나라 장수의 시문, 중수기등현액이 걸려 있다. 태고정 옆의 ㎁ 안채는 처음부터 종택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종택 철거 후 이 터에 자리잡은 십여호의 살림집 중 한채로 추정되며,숭정사 건립 후 봄 가을 제사때 숙소로 쓰는 등 관리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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