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한일관계의 평행선

작년 10월 일본 게이오대학의 학생 50여명이 서울대학교를 방문하여 {한일대학생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이것은 미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만난게이오대학의 시마다교수와 필자가 한일관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기성세대보다는 앞으로 두나라를 짊어지고 갈 대학생들이 직접 만나 한일관계에 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토론하게 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져 이루어진 결과였다.토론회는 오전 9시에 시작하여 오후 6시까지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서로가상대국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영어로 토의가 진행되었으나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양국학생들이 거론하는 토의제목은 판이하게 달랐다. 한국학생들은 백제를 통한 문화이전, 일제침략, 종군위안부 등 주로 한일간의역사적인 문제들을 제기한 반면, 일본학생들은 주로 한일간의 무역관계, 동북아 경제동맹의 편성가능성등 현재및 미래에 관한 문제들을 거론하였다.한일관계에 있어서 일본은 과거를 모르고 한국은 현실을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 바꾸어 말한다면 일본은 한국을 통해서 문화가 이전되었다든지 또는 제국주의적 침략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한국은 일본이 현재 평화를 사랑하고 환경보호에 힘쓰는 경제대국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언제나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면서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데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은 한국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한일관계를 토론하지 않고 언제나 과거문제만 거론하는데불만을 갖고 있어서 서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에 오랫동안 사로잡혔으며 나름대로 조그마한 힘이 생기자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제국주의자로 부각하였다. 즉 일본인들의 시각에는 언제나 일본보다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있었을 뿐 일본과 동등한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도 선진국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그에 상당한 정치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해본 경험이 없는 데 기인하고 있으며, 막대한 구조적 무역흑자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다른나라들로 하여금 무역적자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하는 것은 공존의 철학이 미비하기 때문인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도 강대국들 틈에서 나라를 보전하는데급급했기 때문에 타의에 의한 것이지만 이웃나라와 동등한 입장에서 공존하는 역사를 가지지 못하였다. 따라서 언제나 이웃 강대국의 침략의도를 경계하는 습관과, 침략이 실현되었을때 그 세력에 대해 반항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되었다. 이렇게 보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역사적으로 이웃나라와 동등한 입장에서 공존하는 습관을 길러오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38년간 정권을 잡고 있던 자민당이 물러나고 새로이 호소카와 총리가 이끄는 정권이 수립되어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일본의 정책변화이다.사과 한마디로 과거의 쓰라린 역사를 잊을 수는 없겠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도 과거에만 집착해서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왜곡하는 입장에서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 1.2차 대전에서 침략을 당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도 독일의 진정한 사과를 받은 후에는 독일을 이웃나라로 인정하였고 지금은 유럽공동체하에서 정치적.경제적 통합에 노력하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우리를 간섭해 왔던 중국에 대해 현재에는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과 같이, 이제는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일본이 경제기적을 이루었다면 우리나라도 경제기적을 이룬 나라이다. 한국인에 대한 자존심을 가지고 이웃나라의 과거를 용서하고 자신있게 미래를 설계할 때이다.

올해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게이오대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다. 올해에는 일본의 학생들이 과거의 얘기를 하고 한국의 학생들이 미래의 얘기를 하는 토론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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