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명제와 정치권

금융실명제 실시의 여진이 강하게 미친곳중의 하나는 역시 정치권을 들수 있다. 정치자금이 투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의원들은 법테두리를 벗어나는 검은돈, 공돈, 눈먼돈을 만지기 힘들게 됐다. 자연 의원들의 행태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이번 조치가 전격단행되자 벌써 의원들사이에는 "국회의원 할맛이 나겠느냐"며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현재 민자당출신지역의원들이 공식적으로 들어오는 월고정수입은 세비3백70만원과 중앙당지원금 1백50만원 그리고 상한액이연간 1억원인 후원금이 전부이다.

사실 이액수는 작지는 않은 편이지만 현재 정치관행으로 봐서는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라고 의원들은 털어놓는다. 지역의원들에 따르면 보통 월 2천만-3천만원정도의 돈이 든다고 말한다. 중진인 김윤환의원은 예외로 본인도 "반대급부없이 김윤환이라는 정치인을 키워보겠다는 재력있는 친척이나 친구들5-7명이 매달 5백만원에서 수천만원정도 대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점에 비춰 대략 5천만원선을 거뜬히 넘길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비해 또다른 중진인김용태의원은 계보정치를 하지않은 탓인지 "법정한도내에서 돈을 거두고 지출하고 있다"면서 "자신은 금융실명제로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큰돈을 만지던사람들은 다소 타격이 있지않겠느냐"는 반응을 나타냈다.

한편 이같은 수입과 지출을 비교해보면 평의원의 경우 5백만원정도를, 중진거물들의 경우는 3천만원에서 5천만원정도 외부에서 끌어들여야한다는 결론이나온다. 물론 이들은 후원회가 활성화돼 연간 법정후원금1억원을 다채우는인사들이다. 개중에는 후원회활동은 활발하지 않지만 자기나름대로 맺은 인맥을 통해 개인적으로 돈을 얻어 타쓰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통해 어쨌든 합법적이고 공개적이지 못한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 온다는 점은 누구나 쉽게추론할수 있다.

이제 금융실명제실시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정치권유입자금은 철저히 체크가 되기때문에 후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다소 위험을 감수해야할 것으로보인다. 공개를 꺼리는 지원자들은 도움의 손길을 끊을 지도 모르는 형국을맞고 있다. 이로인해 정치인들이 돈이 궁색해질것은 분명하다.지역의 모의원은 "주위의 도움으로 의정활동을 그럭저럭해왔으나 이제는 현재의 씀씀이로는 우리집생활비도 나오지 않는다"면서 하소연을 늘어놓고 "앞으로는 경조사비는 물론 지구당및 기간조직관리비도 대폭 줄여야함은 물론 얼굴만 내밀고 돈봉투를 내놓는 인사모임에는 자주 갈수도 없을것같다"면서 초절약지출이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또다른 모의원도 "이제는 주위에 밥한그릇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사정이 될것"이라며 "이대로 가면 품위유지가 과연 될지 의문시된다"고 불평을 털어놓고 "큰 이득도 없고 맨날 지역구민들에게 굽신거리고 가정생활도 돌보기 어려울정도로 시달리는 점을 상기하면 다음총선에서부터 정치를 포기할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요즘 국회의원들은 틈만나면 후원회원수와 후원상한금을 배이상올려줄것과 비서진의 보충과 세비의 대폭적인 인상을 외치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식의 정치자금마련을 위한 파티를 기획하고 부업을 시도하려는 인사들도 있다.요즘 정가의 신풍속도중의 하나는 정치인들이 연예인확보에 적잖은 신경을기울인다는 점인데 앞으로는 정치자금의 공개모금시 이들의 역할이 결정적일것이라는 판단때문이다.

그러나 후원금의 상한액이 늘어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것은 아니라는 의원들도 적잖다. 모의원은 "청탁이 없어지는 분위기인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의원들에게 누가 순수한 의도로 후원회에 가입, 지원하겠느냐"며 한숨을내쉬었다.

물론 의원중에서는 "돈많은 친구나 친척 그리고 기업들이 몰래 주는 돈까지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느냐"며 "우리나라가 뭔가 오고가는 동양문화권에 속해있기 때문에 실명제실시에도 불구, 다소 융통성이 있지 않겠느냐"며 여유있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돈이 줄자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희망사항은 역시 지역민들의 정치의식 개선이다. 돈을 기대하지 않고 의정활동만으로 평가하는 풍토가 정착되기를 바랄뿐이다.

한편 모의원은 "대통령이나 중앙당이 돈을 내려보내 주지 않으면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지면서 의원들이 자주성을 갖는 독특한 현상이 벌어질 것"이란 견해를 피력했다.

모의원은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돈있는 유산자들만이 정치를 할 수 있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지역에 있어 광역의원들이 우리 영역까지 침범하는 마당에 돈까지 쪼들려 초라한 처지에 놓여 새로운 비전이 없을 경우 국회의원들의 위상은 땅에 떨어질 것"이라며 태산같은 걱정을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