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는 경제정의 실현뿐아니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깨끗한 정치,깨끗한 사회를 만드는데 필요한 조치다. 일본이 선진국임에도 금융실명제를못하는 이유는 정경유착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소야대시절 야당에서실명제 실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았음에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것은 역시뿌리깊은 정경유착때문이었다. 이번에 정경유착의 두터운 벽이 있었으나 대담하게 했다. 혁명이라 할만큼 엄청난 결단에 의한 것이다"금융실명제 전격실시를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13일, 김영삼대통령이 청와대수석비서관들과 조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밝힌 말이다. 이같은 언급에는 김대통령이 금융실명제라는 소위 '개혁중의 개혁'이란 제도를 결단하면서 가장 유념한 부분이 어디였던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제정의의 실현'과 '정경유착의 근절'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정경유착근절이란 대목이 강조되고 있는핵심어인 셈이다.돈과 권력의 야합을 의미하는 정경유착, 특히 이의 백미급은 재벌과 최고권력자와의 정상과 정상끼리의 결탁이다. 재벌에 대한 지원과 특혜를 대가로 거둬진 정치자금은 소위 '통치자금'이라는 정치인들만이 새겨들을수 있는 이름으로 통칭된채 아래로의 낙수효과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구조의 타락상을 선도해온것이 사실이다. 재벌들의 고속성장이 이루어졌던 3공의 개발독재시절은물론이고 지난 14대 대선에 앞서 정주영전국민당대표가 밝힌 청와대 정치자금제공폭로건등 정경유착의 사례는 사실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하다.실명제는 이같은 우리의 오래된 정경유착의 고리를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만난 많은 의원들은 실명제 실시에 따른 정경유착의 완벽한 단절을 자신있게 주장하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종전과 같은 정경밀월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부인치는 않았다. 실명제 실시로 당장 기업이 비자금을 마련하기가 수월치 않아졌고 이는 결국 돈대 권력에 부수되는 이권제공의 교환자체를 불가케 하기 때문인것이다.
이같은 상황변동에 따라 여야정치권은 지금 충격속에서도 정치자금법, 선거법, 정당법등의 개정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중앙당과 지구당축소문제가 다시심도 있게 논의되고 "이제는 어쩔수없이 달라져야겠다"는 정치개혁의 필요성이 초미의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음성적 정치자금의 고리가 완전차단된 만큼 선거가 철두철미한 공영제로 실시되고 정치자금법등도 지구당운영에 구애받지 않도록 고쳐야할것"(황명수민자당사무총장) "여야가 제도적장치를 마련, 정당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조달하게되면 그동안 파행적으로 운영돼왔던 전국구 의원의 정치헌금케이스도 사라질수 있을것"(김병오민주당정책위의장)등은 한마디로 실명제의 실시에따른 정치권의 충격파를 가늠할수있는 단적인 언급들이다.
교수출신의 민자당 초선의원인 손학규의원은 실명제실시에따른 정치구조의변화와 관련, "일본, 대만도 마찬가지이지만 크게는 정경유착을 기본축으로한동아시아의 개발독재시대의 퇴조를 가속화 시킬것이며 작게는 그동안 비공식적, 음성적이었던 국내정치권과 경제권의 관계가 공식적인 관계로 전환하는혁명적인 계기가 될것"이라고 전망했다.
실명제실시는 '유착'의 상대방인 재계에도 당연히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따라 재계관계자들은 기업의 비자금에의한 '뒷거래'기업경영방식이 쇠퇴하고 원칙에 의한 경영이 뿌리를 내릴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그룹총수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측근의 영향력감퇴와 전문경영인의 실세화등을 전망하기도 한다. 한 정부인사는 "6공때까지만해도 대부분의 재벌총수들이 청와대등 권력기관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주고 대형사업을 수주, 어는 전문경영인도 할수없는 일을 함으로서 그룹내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누릴수 있었다"며"이제부터는 전문경영인들의 기능이 한층 강화될것"이라고 강조했다.바야흐로 실명제실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함으로써 '순수정치'와 '순수기업활동'을 강제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것은 이는 금융실명제의 성공적인 정착화를 전제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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