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문민시대 반문민속성

지난 30여년동안, 우리는 청와대의 각료회의나 혹은 그와같은 수준의 회의가열리고 있는 모습을 뉴스시간의 텔리비전 화면을 통해 자주 보아왔다. 회의석상의 중심이 되는 자리에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고 좌우로 간격을 띄워놓은다음, 각료들이 서열대로 착석하고 있다. 대통령은 꾸짖는듯한 그리고 근엄한 표정으로 회의에 상정된 안건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견해를 밝히고 지시를 내리고 있음직하다. 직선도로에 늘어선 미루나무처럼 질서정연하게 자리잡고 앉은 각료들은 대통령보다 더욱 근엄하고 삼엄한 자세로 대통령의 지시를열심히 받아적거나 읍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대통령의 지시가 잘못된진단에서 나온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거나 나라의 백년지계를 바탕으로 할 적에 어떤 부작용이 생겨난다해서 대통령의 지시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했던 각료들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더욱더 우리들을 착잡하게 만들었던 것은,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노타이차림으로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 다음의 각료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든 각료들의 옷차림새는 한결같은 노타이차림으로 돌변하였다. 대통령이 지방순시라도 나갈라치면 브리핑에 나서는 지방장관들의 차림새는 필경 작업복 상의를 입고 있었다. 간단한 옷차림새 한가지에서도 우리는 그 시대가 갖고 있었던 비민주성과 권위주의의 냄새를 진하게느낄 수 있었다. 제복의 통일성은, 행정관료들에게 일관성을 부여하고 민첩하고 충성심있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군대식 사고방식은 지난 30여년간을 우리의 정치사에 풍미했던 한가지 흐름이었다.그래서 정치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는 서슬시퍼런 무엇이 있고,자칫 한 발 잘못 내디뎠다간 쥐도새도 모르게 어떻게 되는 무엇이 있고, 아는체하고 깐죽대다간 하룻밤 사이에 패가망신하는 무엇이 있어, 감히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었으되 보았던 일이 없었던 것처럼 주눅이 들어 익명의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자식을 낳지못하는 며느리처럼 항상 시선을 내리깔고 억울한 모함을 당한다해도 팔자소관이겠거니해서 구린입도 떼지않고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끝장이 났고 또한 반드시 청산되어야할 지난시대의 병폐였고 아픔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가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일이 요사이 신문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어 놀랍다. 그 당당한 국회의원들이, 그리고 국민의 이름으로 떳떳하게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청와대로가서 자기들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말들을 스스럼없이 토로했다해서, 대통령이 듣기에 다소 껄끄러울수도 있는 말들을 드렸다해서 언노가 트였다느니 정국의 신선한 모습이니해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른바 문민시대에 당연했어야할 일들이 어찌 당연하게소개되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결코 대통령이 작은 귀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올바른 시선과 뚜렷한 주관, 그리고 강직한 품성을 가지고있음직한 국회의원들이 무엇엔가 주눅이 들어 국민들로 하여금 작은 귀를 가진 대통령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군사정권시대에서 가장 큰 병폐의 하나였던 흑백론에서 비롯되었던 피해의식이 아직도 국회의원들의 뇌리에서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이러한 문제들에 도사리고 있는것은 아닐까.

얼마전 개혁의 방향을 과거사에 집착하지 말자는 내용을 골격으로해서 쓴 어떤 시인의 칼럼을 신문에서 읽은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며칠후에 간접적으로들려온 말은 속으로만 염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시인은 칼럼의 내용을 비난하거나 혹은 욕하는 여러번의 전화를 받고 괴로움을 당했다는얘기였다. 자신의 기분에, 혹은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글을 발표했다해서 그필자에게 괴로움을 주었다는 이런 일들은 지난 군사정권시대때 많이 들어왔던 얘기들이다. 밝은세상이 왔는데도 그 밝은 세상을 국민들 스스로가 깨달아서 향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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