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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상투와 하투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의 무덤을 도굴한 사람은 항우라고 한다. 항우는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황제 무덤속의 금은보화를 노렸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인류최초의 도굴범은 항우라고나 할까. 그런데 진시황릉의 크기는 2천년이지난 지금도 봉토의 둘레가 42.3km, 높이 1천410m에 달한다고 하니 그 거대한 무덤크기로 볼때 항우의 도굴은 과연 가능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1974년봄 진릉봉토 동쪽 시오리쯤 지역에서 농민에 의하여 발견된 몇개의 도질무사용의 머리가 단서가 되어 발굴되기 시작한 진시황릉 병마용은 세계가 경탄한기적이었다. 총2만평에 묻힌 병마용의 발굴유물은 전차 100여 대, 말 600여필, 각종무사도용 7천건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 장군과 병졸, 각종 무사도용의 얼굴표정을 살펴보는 것은 2000년전 고대인들과 대화라도 나누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근엄한 표정, 미소짓는 얼굴, 노한 모습등 그 하나하나가모두 다르게 만들어진 중국 고대 조소의 걸작품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그러한무사도용들의 머리모양을 보면 모두 상투를 틀었는데, 지위가 낮은 무사는옆으로 비틀어진 모양을 하고 높은 무사는 상투를 바로 하고 있다. 한국인이단발령때 목숨과 맞바꾸었던 그 상투의 원형이 바로 진대의 풍습이었던 것이다. 중국에 가는 사신들을 수행했던 조선사람들이 갓과 상투를 애지중지하는것을 보고 중국도적들이 갓을 몽땅 훔쳐두고선, 갓이 없어 맨상투로는 행차못하는 조선사람에게 비싼 값으로 되팔았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의 상투인식은 자기 인격의 상징 바로 그것이었다. 상투는 하투의 모양을 상징하고, 하투는 씨를 뜻하는 남근을 상징한다고 필자는 추단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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