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한을 향한 정신의 아름다움

이 맑은 가을날 오후, 어쩌면 진부해 보이는 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의내면을 노래한 권국명의 시편들 ({현대문학} 가을호)에서 나는 {무변의 우주끝}에서 {루비의 석류}알로 터져 나오는 {정신의 한끝}을 읽었다. 어딘가 미당의 그것을 연상시키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십년전의 어조를 유지하고 있는그의 태도가 오히려 신선한 느낌마저 주는 것은 아마도 요즘의 시들이 너무거칠거나 투박한 산문 혹은 경박한 광고문류의 재치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는 점에 식상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세상이 변하고 시간은 흘러 {청춘의 징역시간}과 {어깻죽지로 날으는} 힘겨운 {사랑}도 지나갔지만, {처음 오동꽃을 비추는 아침 햇살} 혹은 {가을 서릿길을 날으는 머언 기리기} ({내 마음은})와 같던 {내 마음}은 전과 다름이 없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그것은 아마 그도 이제 {청춘의 징역시간}과 {사랑}의고통을 지나 지천명의 고개를 넘으면서, 유심적인 {마음}의 세계를 정관하는,조용한 정신주의의 마루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듯 하다.작품 {가을}에서 보여주는 {나의 정신의 한 순간은/익어터진 루비의 석류와도 같다}는 진술은 고고하고 아름답다. {무한은 이 빛나는 보석위에/잠시 제모습을 부재로 드러내고/잠시 가을이 올때까지 또 어디에서/기다리고 있는것일까} 또는 {끝없는 무변/우주의 어느 끝에/당신은 얼굴을 숨기고 있다가/이 서느러운 틈 사이로/잠시 그 모습을 비추고 지나가는 것일까}라는 독백은우리들의 경박한 일상성을 깨고 존재의 근원을 향한 실존의 깊은 자기성찰을보여준다. 지상에서 나의 존재는 결핍이고 유한이지만 당신은 충만이며 무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신의 한 순간}은 {루비의 석류}와 같은 보석이고 당신은 그 보석위에 모습을 드러내므로 나의 존재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시는 무한자인 {당신}과 유한자인 {나}의 존재론적인 관계를노래하는데, 그것이 서늘하게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그리하여 저 맑고 깨끗한 가을 햇살 속에서 {잠시 제 모습을 부재로 드러내는} {당신}을 바라보는시인의 시선을 통하여, 우리는 무한한 존재자의 서늘한 눈빛과 유한하지만 그러나 보석같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아름다움과 감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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