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변화...그 격동의 오늘-(10)

은행원하면 60-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화이트칼러의 대명사였다.안정되고 편안한 직장, 남아도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온갖 수당, 보너스가쏟아져 김장보너스까지 받을때도 있었다. 별사고 없으면 정년까지 보장되는최고의 직장이었다.K대리가 은행에 입행했던 80년대 초까지만해도 직장분위기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금융자율화와 함께 불어닥친 금융실명제, 금리자유화등 익숙지않은말들과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수없었던 금융환경의 변화속에서 걸으면 도태되고 뛰어야만 살아남을수 있는 적자생존의 시대를 맞은것.

K대리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침 7시면 일어난다. 아침은 먹는둥 마는둥 집을 나서면서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가뜩이나 혼잡한 도로에 지하철공사다 뭐다 온통 파헤쳐 놓은통에 클랙슨 소음과 함께 자동차에 떠밀려 회사에 도착하면 8시30분. 지점장실에서 하루일거리에 관한 회의가 시작된다. 저축증대캠페인, 거액예금 만기도래분 체크, 섭외대상처보고, 창구친절과 사고방지를 위한지점장훈시를 끝으로 회의가 종료된다.

"안녕하세요. 00은행입니다" 동전교환기를 앞세우고 인근상가를 방문, 동전교환과 함께 새로나온 상품을 소개하면서 "꼭한번 들러 주십시오"라고 간곡히부탁한다.

과거에는 선임자 정도면 나른한 오후 사우나를 즐기곤 했으나 요즈음은 그렇지 못하다. 그야말로 1인2역 내지 3역을 해야하기 때문에 바깥일이 끝나면 빨리 돌아와 밀린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밀린 결재와 함께 계속 넘어오는 전표결재를 하면서도 거래선이 방문하면 상담도 해야한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면 가끔 고객과 창구직원과의 마찰도 있다.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지점장 나오라 그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최근들어 잘잘못을 따져 보지도 않고 목소리만 높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민주화가 이런것인지" 속으로 중얼거린다.

업무종료 시간이 가까워 오면 주요거래처에 파출수납을 나간다. 지친 몸을이끌고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셔터가 내려진 사무실로 돌아오면 또다시마감업무에 쫓긴다.

저녁에는 어렵게 성사시킨 거래처와의 약속, 못하는 술이지만 어쩔수 없다.음주운전 단속에 걸릴까봐 승용차를 세워두고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도착하면 밤11시30분. 전쟁이 끝나고 고요만이 주위를 엄습한다. 그러나고달프지만 보람있는 하루였다고 자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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