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의 문민정부 출범이라는 벅찬 기대속에 막이 올랐던 계유년도 이제 쌀시장 개방이라는 높은 파고에 휩싸이면서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변화와 개혁의 기치를 내건 김영삼정부의 탄생은 각계각층 각분야에 엄청난변혁을 가져왔다.사정과 재산공개 파동은 정치권과 공직사회에 한바탕 회오리를 몰고 왔으며금융실명제 실시는 경제에 일대 충격파를 던졌다.
또한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등 잇따라 터진 대형사건사고는 우리사회의 어두운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희망찬 갑술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숨가쁘게 펼쳐진 격변의 문민정부 첫해의 정치권을 되돌아본다.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는 안으로 나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부정부패 척결에는 결코 성역이 있을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끊을 것을 끊고, 도려낼것은 도려내야 합니다]
지난2월25일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있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영삼대통령은취임사를 통해 이같이 선언했다.
개혁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김대통령 취임후 지난10개월은 어느하루 영일이 없었던 가히 혁명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취임첫날 청와대 오찬에 칼국수를 등장시키며 청와대 앞길을 25년만에 개방,변화의 조짐을 느끼게 했다.
사흘째인 27일 자신의 재산공개는 곧바로 부정부패척결을 향한 사정의 칼날로 이어졌다.
정국을 강타한 재산공개는 허재영건설 박양실보사부장관의 퇴진을 몰고오는등 갓 출범한 첫내각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김재순의원이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정계를 떠났으며 박준규전국회의장의 민자당 탈당에 이은 정계은퇴를 몰고 왔다.
김대통령 스스로 지칭한 {명예혁명}이었으며 {성역}이 무너지는 현실이었다.뒤이어 터진 슬롯머신사건과 동화은행 비자금사건은 박철언 김종인의원의 구속과 이원조의원의 일본도피, 엄삼탁병무청장 이건개대전고검장의 구속등 사정의 회오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이러한 개혁작업은 권력과 부를 함께 가질 수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불법.편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는등 우리사회의 뒤틀림현상을 바로 잡는 교정의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일련의 개혁작업이 과거청산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미래에 대한 비전제시 없이 무계획적으로 이뤄짐으로써 초법적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다.
또한 {형평성 결여} 시비는 김대통령의 개혁에 적지않은 흠집을 남겼다.이원조의원의 {출국방조}는 국민들과 야권에 {성역있는 사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박철언의원 구속과 박태준의원을 겨냥한 포철 비자금 수사에 대해서는{정치보복} {표적수사}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와중에 대구.경북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엮여들어가고 도처에서 소외되는소위 TK몰락을 지켜보아야 하는 지역민들은 착잡하기만 했다.이는 끝내 {대구 정서}라는 이상기류를 형성하면서 동을보선을 통해 표출됐고, 고속철도 지상화문제로 그 골이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결국 김대통령의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사정은 계층간 지역간 새로운 갈등을유발시켰다는 점에서 공 못지않게 과도 남겼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것이다.
군부 또한 개혁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김대통령은 취임 10여일만에 김진영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기무사령관의 전격적인 경질을 시발로 하나회와 12.12인맥정리, 인사비리 척결과 성역중의 성역이었던 군을 장악했다.
{깜짝 놀랐지}라는 김대통령의 자평을 실감케 하는 그야말로 예상을 불허한전광석화같은 조치였다.
과거사에 대한 재평가작업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김대통령은 현직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4.19묘지를 참배하고 {의거}로 축소평가돼온 4.19를 {혁명}으로 재평가하고 문민정부가 4.19정신을 계승하여 완성시킬 것을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광주 5.18을 맞아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위에 서 있는 민주정부]라며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재평가로 광주문제의해결을 시도했다.
이와함께 12.12사태를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적 사건}으로 5.16을 {분명히 쿠데타이며 우리의 역사를 후퇴시킨 하나의 큰 시작}이라고 규정했다.이렇듯 정치논리로 일관돼 온 김대통령의 정치는 경제등 다른 분야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취임초 {임기중 기업으로부터 단 일전의 돈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은 기업을잔뜩 움츠려 들게 하는 역작용을 낳아 투자의욕을 상실케 함으로써 신경제라는 청사진에도 불구, 경제회생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여름밤의 깜짝쇼}로 불리는 금융실명제실시는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미비한 사전 사후책으로 충격과 혼란을 가져왔으며 특히 기반이 허약한 지역경제의 숨통을 더욱 죄어 대구경제를 최악의 지경으로 몰아 넣었다.이러한 사회분위기속에 발생한 구포 열차사고, 목포아시아나기 추락사고,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등 잇따른 륙.해.공대형참사는 민심이반까지 가중시켰다.통일.대북문제에도 문민정부는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개발문제는 당사자인 우리가 철저히 배제된 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남북대화 역시 진전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나치에만 주력해온 김대통령의 첫 외치인 지난달의 방미는 외화내빈이라는일부의 혹평속에서도 그런대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마저도귀국 직후에 터진 쌀개방 바람에 빛이 크게 바래고 말았다.이 와중에 국회에서 보여준 예산안등의 날치기 통과는 {달라진 것이 없는 문민정부}라는 오점을 남김으로써 국민들을 또 한번 실망시켰다.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김영삼정부를 가장 곤혹스럽게 한것은 쌀시장 개방문제.연말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쌀개방 소용돌이에 김대통령과 정부는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쌀개방 절대반대를 외치는 국민.특히 농민들의 세찬 반발과 농정부재에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속수무책이었다는 비난에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를 하지않으면 안되었다.
대통령의 사과에도 농심은 좀처럼 가라앉을 것같지 않을 상황이며 정치권은당정개편설등으로 뒤숭숭하기만하다.
물론 지난10개월을 놓고 새정부의 공과를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다.그러나 올해는 분명 우리정치사에 지워질수 없는 큰 획을 그은 원년이었다는사실은 아무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다.
어수선한 정국을 슬기롭게 마무리하고 보다 희망찬 새해를 설계해야 하는 과제를 안은채 김대통령의 문민정부 첫해는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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