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예측불허 개혁폭풍... "고무줄잣대"논란

문민정부 첫해, 정치는 한마디로 개혁과 사정으로 실종됐고 공직사회는 잔뜩움츠리고만 있어 눈에 띄게 한 일이라고는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오직 감사원, 검찰등 각급 사정기관만 분주한 한해를 보냈다.출범초부터 몰아닥친 개혁과 사정바람에 정치권은 숨을 죽였고 연이어 터진재산공개파문은 더이상 목소리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얼어버리게 만들었다.복지부동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신정부출범이후 1년내내 정치권 뿐만아니라 행정부와 사법부등 공직사회는 사정과 재산공개 문제로 옴쭉달싹하지못했다.일단 10개월여가 지난 지금 재산공개와 기나긴 사정작업으로 사회지도층의분위기는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있다.

또 이회창이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권력의 시녀노릇만 해오던 감사원이 제모습을 찾았다는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전직대통령에 대한 조사라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가능했던 것은 분명히 이감사원장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치보복의 인상을 주었던 점과 형평성에 대한 문제점이제기된 사실은 사정방향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었다.김영삼정부 첫해를 규정짓는 일중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재산공개였다. 그러나 미처 법적인 강제조항이 마련된 것은 아니었다.그만큼 다분히 개혁이라는 대세에 휩쓸려서 하게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이같이 울며 겨자먹기로 시작된 공직사회의 재산공개바람은 새정부출범초에시작돼 그 여진이 연말까지 계속되는 강도를 나타냈다.

뚜렷한 기준없이 들쭉날쭉 실시된 3-4월의 1차공개에 이어 7월의 2차공개는동산과 부동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했고 법적인 장치도 구비해 어느정도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공직자들의 엄청난 재산규모는 항간의 화제로 등장했고 이에 대한 비난여론은 김대통령의 개혁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주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정가에서는 재산축적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지적되거나 과다재산으로 구설수에오른 사람은 다음 선거 당선이 힘들 것이라고 분석할 정도로 재산공개의 파문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특히 김재순 박준규씨등 전현직국회의장은 개혁태풍을 못이기고 정계를 떠났고 몇몇 의원들은 의원직을 내놓거나 탈당하는사태까지 맞기도 했다. {토사구팽} {유선무죄 무선유죄}등의 유행어도 이때나와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유행어에서 알수 있듯 문제성 있는 의원들의 처리에 있어 불공정성이 지적되기도 했고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왜 안 봐주느냐]는 불만의소리도 터져 나왔다. 사실 고위층에 미운털이 박힌 사람이거나 힘없는 인사들만 당했고 정치적인 영향력이 크거나 실세와 가까운 사람들은 거의 당한 사람이 없어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재산공개의 {뒷처리}를 맡은 공직자윤리위의 활동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다는 구실을 내걸기는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끝을 맺었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다.

재산공개와 더불어 정치권등 공직사회를 얼어붙게 만든것은 신정부 출범초부터 누누이 강조된 사정이었다.

특히 과거 권력의 모태로 여겨져 왔던 군부는 신정부 출범이후 어느 조직보다 매서운 된서리를 맞아 5-6공시절의 군수뇌부 거의 전부가 옷을 벗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율곡사업과 군인사비리와 관련, 각군 참모총장을 지낸 인사뿐만 아니라 이상훈 이종구씨등 두명의 전직 국방장관까지도 구속되는 곤욕을치렀다.

그결과 일부 소외됐던 세력들로부터 [하나회같은 특수한 사조직이 아닌 군전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으나 또다른 일부에서는[특정지역을 배제한뒤 다른 우대지역을 만들어냈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렸다.정치권에서는 대통령선거법 위반으로 걸어 대통령후보이기도 했던 정주영전국민당대표를 법정에 세운 문민정권의 사법부는 결국 실형을 선고하는 이례적인 예를 남겼다. 또 박태준전포철명예회장(전민자당최고위원)에게는 유례를찾아보기 힘든 장기간의 세무조사를 통해 뇌물수수와 탈세혐의를 씌워 살던집마저 압류해버렸다.

이와 함께 새정부의 사정작업에 큰 흠집을 내면서 정치적 보복이라는 인상을지울수 없게 만든 것은 박철언의원을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시킨 것이었다.이들은 모두 문민정부탄생에 장애물로 여겼던 사람들이었다.반면 동화은행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이원조의원의 일본도피 사실은 신정부의사정작업에 형평성이라는 의문을 제기할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천문학적인 대선자금을 마련하는데 공을 세운 이의원을 다치게 할수는 없었을것]이라는 정가일각의 분석은 신정부의 개혁과 사정에 흠집을 내기에 충분한것이었다. 같은 사안으로 6공시절 청와대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의원이 구속수감된 것에 비추어 보면 [사정의 잣대가 과연 무엇이냐]하는 비판을 면하기어렵다는 지적이다.

재상공개와 마찬가지로 정권출범에 공이 큰 공신들은 일방적으로 봐준다는인상을 지울수 없게끔 만든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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