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9시(한국시간 25일 오전5시) 파리교외 블로뉴 비앙쿠르에 있는 장르네 푸앙의 아파트는 굳게 문이 잠겨있었다. 마치 사건전모의 미스터리를혼자만이 간직, 철저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집주인 푸앙의 입처럼 그의아파트는 창문까지도 두터운 커튼으로 드리워져 있었다.푸앙은 최근 프랑스의 유명한 괴도 {루팡}처럼 한국언론과 공관을 상대로 거의 인질범수법에 가까울정도로 {히트 앤드 런} 방식의 괴팍한 행동노출.잠행리듬을 계속해오다가 24일 아예 크리스마스 휴가(?)를 구실로 행방을 감췄던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푸앙과 공범 주광용씨는 서로가 {주종관계}에서 자신은 {주}가 아니라 {종}임을 내세워 책임전가를 해왔다.
푸앙은 선친이 애국지사였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22세까지도 아버지로부터 우리말을 배우지 못한 탓으로 {한국}에 대한 그의 접근노력은 자력으로 이뤄질수 없는 배경을 갖고 있다. 이런측면에서 그는 자신을 사주했던 {감춰진 인맥}을 들추며 자신의 범행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을 적극 시도하려고 했다.그의 선친인 홍재하씨의 인생 또한 국내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독립지사의어려운 말로를 보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지난 40년대 유학생 신분으로 도불한 민선식박사(낭트대학명예교수.72)는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홍옹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홍옹은 말년(50년대후반)에 공장노무자로 밤늦게까지 야간작업을하며 자식4남매(푸앙의 두누이와 남동생)의 생계와 학업을 위해 몸을 혹사했습니다.{푸앙}이라는 성도 홍옹이 당시 이곳(프랑스)에는 화교들이 많아 화교성씨에푸앙이 있기때문에 프랑스사람들이 손쉽게 익힐수 있도록 하기위해 {홍}을{푸앙}이라고 발음하도록 했어요. 푸앙은 성장후에도 이발사 신분으로, 동생은 정비사신분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두누이는 모두 한국인에게 시집을 갔으나큰 누이는 남편 임모교수와 이혼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민박사는 일부국내신문에 홍옹이 독립지사적 기개로 프랑스에서도 민족자존을 지켰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홍은 자신의 뜻을 이루지못한 비탄감에 젖은 나머지 말년에 폭음을 자주하며 건강을 해쳐 결국 명을 단축했고 자녀들 또한 그에 따른 고생이 극심했던 것같다고 홍옹가문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소개했다.
푸앙은 선친으로부터 우리얼과 민족혼에 대한 가르침보다는 생활고에 따른고통을 감수하며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낸 것이 확실하다. 그는 이때 생계수단으로 미용기술을 습득, 무기중개업에 뛰어들기전까지 꾸아뿌르(프랑스어로 미용실의 뜻인데 남.여 함께 이용)에서 풍족치않은 수입으로 생활이어려웠던 것 같다. 그는 이발사수입으로 생계를 어렵게 꾸려야만 했던 현실한계를 극복하고 일확천금의 기회를 쉽게 찾을수 있는 유혹의 손길(무기중개상)에 빠져들어 아버지나라의 국익과 명예를 짓밟는 {매국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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