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농촌붕괴가 도시붕괴 시위확산

93년 12월. 7년간의 UR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쌀을 비롯한 기초농산물에대한 정부의 기본방침이 하루아침에 시장개방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은 지킨다} {일국의 장관이 하는 말이니 믿어달라}는 공약(공약)만남긴채.이러한 정부의 태도변화는 농민뿐 아니라 전국민으로 하여금 {속았다}는 분노를 아스팔트위에 토해내게 만들었다.

농민들은 농기계를 반납하고 벼쌓기투쟁을 벌이면서 쌀시장개방방침에 맞섰다.

전농경북연맹은 12월2일 안동농민대회를 시작으로 지역별로 농민대회를 갖고농기계를 반납했다.

농어민후계자들도 14일 신천무너미터에서 대규모 농어민대회를 갖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쌀시장개방반대 대열에는 농민들뿐아니라 교수 학생 재야 시민운동단체 종교단체 주부들도 동참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쌀시장개방은 민족자주권과 생존권의 포기"라며 대선공약이행과 국민투표실시를 촉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경북대와 영남대교수들은 12월1일과 2일 기초농산물 수입반대와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선거공약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교수들의 성명발표를 시작으로 6일에는 지역의 학생 시민 재야단체와 야당이참가한 {쌀및 기초농산물 수입개방저지 대구.경북 범시도민 비상대책위}가결성됐으며 이후 범대위를 중심으로 대규모 쌀개방반대 집회와 서명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학생들도 거의 매일 대구백화점앞에서 쌀시장개방반대 시민홍보활동을 벌였으며 경북대 학생 40여명은 4.5일 이틀간 시청앞광장에서, 경산대생 5명은 경산시 오거리서 8일부터 5일간 철야단식농성을 벌이며 정부의 {굴욕적인 쌀시장개방}에 항의했다.

전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UR협상은 쌀과 기초농산물개방으로 타결됐다.쌀개방으로 우리의 농업이 풍전등화라고 한다.

우리농산물에 비해 값이 1/2-1/6밖에 안되는 외국농산물이 수입되면 농산물가격폭락으로 농업연관산업및 지역경제가 붕괴하게 되므로 농촌의 붕괴는 곧도시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것이 도시민의 쌀시장개방반대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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