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송년사

다사다난이란 표현으로는 부족할만큼 숨가팠던 계유년이 저물어간다. 1993년은 단순한 년대기적 의미를 뛰어넘는 정치사적 큰 획을 그은 한해였다. 30여년간의 권위주의적 군사정치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게 한 3백65기도 했다.지난날의 굴절된 역사를 바로 잡기위한 사정과 개혁의 돌풍은 숱한 시련을안겨줬고, 깊숙이 팬 생채기가 아물지 않은채 지금도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개혁과 변화를 통한 신한국창조와 함께 부정부패 척결.경제활성화.국가기강확립을 3대 당면과제로 제시한 김영삼대통령의 국가경영 포부도 아직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채 이 한해가 마감되고 있는 것이다.**문민정부의 출범**

돌이켜보면 김정권은 첫 조각에서부터 일부 각료의 도덕성 시비로 달갑잖은부담을 안은채 출발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파문은 공직자 재산공개에 따른 사정회오리에서 일기 시작했다. 전.현직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이 사퇴하고,5.6공 실세들이 구속또는 해외로 도피하는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표적사정 시비가 일고, 소위 TK세력의 퇴조를 예고하는 여러조짐들이 있었으나 이에대한 평가는 뒷날 역사에 맡길수밖에 없을것 같다.군개혁과 비리척결을 위한 대규모 숙군작업 또한 격렬했다. 12.12관련자등하나회 인맥이 거세되면서 해임 또는 전보된 장성만도 39명에 달했다. 해.공군 전총장들의 구속과 군수뇌부의 개편등을 통해 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위한 새정부의 집요한 공략이 계속됐던 것이다. 군을 국민의 군대로 만들려는 문민정부의 시도는 성공한 측면도 있으나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있다.연말 개각에서 권녕해국방장관이 물러나고 이병대장관이 등장하면서 률곡사업과 군수업무에 대한 전면적인 특별감사실시를 들고나온 것부터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볼수있는 것이다.

**분노 자아낸 쌀개방**

이런 와중에서 8월12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금융실명제와 연말의 쌀시장개방결정은 우리경제의 앞날을 판가름할 중요한 변삭로 등장했다. 시행방안 논의만으로 10여년을 끌어온 금융실명제의 경우, 여러가지 보완조치가 뒤따랐지만성공여부는 더 두고봐야할 소지들을 남겨두고 있다. 또 UR협상 타결에 따른쌀개방문제 역시 정부는 10년간의 관세화유예기간확보등 유리한 조건을 따냈다고 변명하지만 우리 농업및 농촌의 근본적인 구조개편을 불가피하게 만들고있다. 특히 UR협상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떳떳치 못한 대응자세는 국민들에게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했고 김정권의 도덕성에 흠집을 남기기도했다.쌀과 함께 쇠고기.보리.고추.마늘.양파등 14개 기초농산물뿐만아니라 경제의 모든 분야가 국제개방에 노출되는 현실앞에,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대처할 것인가가 앞날의 과제인 것이다.

**{명}을 압도한 {암}**

첨단과학기술을 선보인 대전엑스포개최, 미시애틀에서 열린 APEC정상회담등을 통한 국위선양은 그런대로 흐뭇한 뒷끝을 남겼다. 하지만 지난한해는 아무래도 밝음(명)보다 어두움(암)이 더 압도한 해로 기록될수밖에 없을것 같다.개혁을 앞장서서 주도해야 할 정치권의 의식수준은 묵은 틀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파행적인 국회운영도 지탄의 대상일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초부터 불거진 일부 대학의 조직적인 입시부정과 사상 초유의 학력고사 정답유출사건등교육계의 비리는 나라의 장래를 염려스럽게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하늘과 땅.바다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형참사는 서슬퍼런 사정한파에도 아랑곳없이사회전반의 해이된 기강이 초래한 불상사였고, 나실없이 웃자란 우리의 일그러진 또다른 모습을 드러낸 결과에 다름아니었다.

**여전한 불씨 북한핵**

한편 국제적으로는 미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한데 이어, 일본에서는 38년간의자민당장기정권이 종식되면서 호소카와 연립정권이 등장하는등 큰 변화를 가져왔다. 뿐만아니라 러시아에서는 보.혁대결에 의한 유혈사태가 있었는가 하면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오랜 반목과 대결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중동지역에 화해의 기틀이 마련되기도 했다.그러나 무엇보다 큰 이슈는 역시 북한의 핵문제에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NPT(핵확산금지조약)탈퇴 선언이후 북한이 취한 일련의 외교행각은 한반도의긴장감을 고조시켰고,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공방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남북문제타결의 관건으로남아있는 것이다.

이제 한해를 보내면서 지난 날들을 되돌아봐야하는 세모의 문턱에 우리는 지금 서있다. 지역간.계층간.세대간.빈부간.노사간의 갈등은 과연 얼마나 해소됐는가. 사회지도층의 의식구조는 어느정도 바뀌었는가. 다같이 반성할 일이다. 그래서 갈등과 대립의 삶이 아니라 화합과 자율의 시민사회를 구축하는부단한 노력을 다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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