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신정 설}에서 {구정 설}로 세태가 바뀌고 있지만 경북의 한마을은70여년 신정을 고수해오고 있어 화제.경북의 지붕 일월산자락에 옹기종기 둥지를 튼 한양조시 집성촌주실마을. 갑술년 햇살이 집안마다 가득한 가운데 오랜만에 귀향한 일가붙이들로 올해도떠들썩한 새해아침을 맞은 것.
{조상들께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다니는 즐거운 수선스러움. 마을고샅을 오가는 정겨운 인사. 어른아이 모두 때깔고운 한복입성}.70여년째 이어오는 이곳 주실마을의 신정과세 풍경이다.
일제의 강압에 의한 {서양 설}로 치부돼 수년전부터 거의 사라진 신정과세가깊숙한 산골마을에서 한종가를 중심으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조차하다. 휴양과 관광으로 신정연휴를 보내는 요즘 풍속도로 볼때 이마을40호의 집단 신정과세는 {이단}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남다른 자긍심으로 신정과세가 자리잡아있다.이곳 주실마을은 수많은 학자와 문인을 배출한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민족시인 조지훈(동탁)이 태를 묻은 곳이기도 하다.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곳 신정과세의 내력은 이곳 마을사람의 개화사상과 신문물수용에 닿아있다.
3백여년전 이곳에 집성촌을 이룬 한양조씨 후손들은 구한말 실학영향을 강하게 받아 개화에 일찍 눈을 뜨면서 1895-1920년사이 마을젊은이 34명을 일본에유학시켰다. 따라서 이 마을의 과세 또한 유학간 자제들의 겨울방학에 때를맞춰 양력설을 쇠기 시작한 것.
이후 조근영(국립도서관장역임) 헌영(제헌의원) 동탁(시인.고려대교수)등 이곳 출신들이 각계에서 생전에 이름을 떨치자 양력과세에 대한 나름대로 자부심과 함께 30년전(64년)에는 아예 이를 향약에 못박았다.
이같은 양력설 고집에도 시련은 있었다. 양력과세를 권장하던 일제시대인지라 주위의 시선이 결코 고울리 없었다. 우리민족의 전통설을 버린다는 따가운눈총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
[그같은 시련과 오해는 이곳 주실마을 사람들만이 일제의 그 혹독한 창씨개명을 끝내 거부했다는 사실로서 극복할 수 있었다]고 이마을 조진영씨(80)는전했다.
[이중과세가 논란이던 시절에는 이웃의 오해를 피하기위해 음력설에는 마을남자 전부가 산에 나무하러간 적도 있습니다|]며 조씨는 웃었다.이곳 주실마을에는 지난연말부터 방학을 맞은 일가학생들이 찾아들어 {자랑스런 집안}얘기로 꽃을 피웠다. 이곳 출신인사는 현재도 대학교수.박사만20명에 이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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