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무능력한 하느님께

얼마전 내용이 깨끗하게 비어있는 책을 선물받았다. 책 아래에는 {당신은 무엇을 여기에 쓸 것인지}라고 적혀 있었다. 사실 나는 여기에 무엇을 적고 어떤 그림을 그려야하는지 알고 있다. 나의 삶, 나의 날, 나의 밤들을 하나하나그려가게 될 것이다.지난해 나는 이 책처럼 나의 밤낮을 적을 시간의 장을 하느님으로부터 자그만치 8,760시간이나 선물받았다. 이 시간위에 나는 나의 생활을 그려나갔지만빨간 동그라미를 그릴 때 노란 삼각형을 그렸거나 달을 그려야할때 별도 그렸다. 빈시간을 채워가면서 아집으로 나열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로 가득했음을시인하기에 나는 우둔한 죄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또 나에게새 생명을 주셨고, 깨끗이 비어있는 책과 같은 시간들을 또 주셨다.사람들은 정말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이 세상에는 죄와 악이 있는가라고 얘기한다. 이 말은 옳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너무 무능력한 존재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무능력한 하느님이기에 무척 다행스럽다. 만일 그렇지않아서 우리들이 바라는 대로 이 세상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하기 위해 악인을 싹쓸이해버린다면, 평화와 아름다움을 맛보기도 전에 바로 나부터 그 싹쓸이에 포함되어 없어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분이 무능력한 하느님이 아니라 나의 참회를 인내하시고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일 수밖에 없는것이다.

이제 또 새해를 맞아 다짐해본다. 올해는 나의 책에 색깔을 잘 골라서, 세모인지 동그라미인지 아니면 직선을 그을 건지 먼저 당신께 물어보고 빈 공간을채워나가겠습니다. 남의 티를 보기 전에 내 자신의 들보부터 먼저 보겠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