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의리가 중시되는 사회(윤재인)

"각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교도소를 나온 장세동이 집에도 들르지않고전두환전대통령을 찾아 건넨 첫마디다. 미련스러울만큼 충직한 이 옛 부하의사나이다운 의리앞에 전씨는 매우 흐뭇했으리라 여겨진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옥고를 치르면서도 누(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버텨준 그의 배짱과기개가 눈물겹도록 고맙기까지 했으리라.**미련스러운 충직**

혹자들은 장씨의 이런 처신을 두고 자기가 모셨던 대통령에 대한 의리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혼동하고 있다고 매도한다지만, 우리 주변에 이만한 의리도 흔치않기에 오히려 돋보인다. 그리고 세상인심이야 뭐라고하든 끝까지 등돌리지않고 따르는 수하가 있다는데서 전씨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음미했음직하다.

지난 정초 연희동 두 전직대통령댁엔 많은 세배객이 다녀간 모양이다. 언론들은 어느쪽에 사람이 더 많이 붐볐느니, 전.노씨의 접빈태도가 대조적이었다느니...등 얘깃거리를 전하고 있지만 양가의 화해조짐은 해가 바뀌어도 좀체보일 기미가 없다. 전씨의 말처럼 마누라 보다 더 아꼈던 친구의 배신에 아직도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탓인가. 여기서도 의리라는게 인생살이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인가를 되새기게 해준다.

그런데 어쩌다가 인간적인 의리를 시답잖은 것으로 여기는 고약한 풍조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것일까. 특히 지난 한해동안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서사라지면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음은 무슨까닭인가. 아마도 서슬퍼런사정바람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잖아도 죽은 정승이 산개만도 못한 염량세태라고들 하지 않던가. 이런 비정함이 지난시절 인연들을끊어버리다보면 의리따위는 실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혁은 수단일 뿐**

김영삼정부는 올해도 지속적인 변화와 개혁을 국정운영의 우선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기야 정치를 개혁하고 국민의식을 변화시켜 국가경쟁력을 키운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그것이제대로 추진되지 못했을 때의 심각한 후유증이다. 지속적인 개혁도 좋지만,만약 본래 의도와는 달리 국민정서를 혼란시키고 사회분위기만 흐려 놓는다면 이만 저만 낭패가 아닌 것이다.툭하면 사정당국은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추진을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눈치꾼 늘어나고, 자기 살기 위해 의리같은 것은 안중에 두지않는삭막함만이 남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변화와 개혁은 정의로운 세상, 푸근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뿐 그것이 목적일 수는 없음에야. 때문에 개혁은 혁명과 다르다고들 하지않던가. 반대하는 사람도 끌어안고 가야하는 것이 개혁이고, 그래서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아쉬운 덕목**

의로운 동물의 대명사처럼 통하는 개띠의 해를 맞아 의리에 관해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지금 힘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고싶다.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더라도 아무쪼록 인간적인 의리까지 씨가 마르는 일은 없도록 해달라고. 아마도 이는 언젠가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야할 자신들에게도 요긴한 대목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끈끈한 정. 지위나 연령의 고하에 상관없이 오가는 의리.'의리가 중시되는 사회'는 그래서 더욱 아쉬운 덕목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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