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사회적 격동기였던 70, 80년대의 우리문학은 고통스러운 시대상과변혁을 갈망하는 몸부림의 투영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신춘문예작품에도 예외없이 이같은 경향이 뚜렷했다. 그러나 동구권의 붕괴와 국내 정치상황의 변화, 국제화시대를 맞은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신춘문예의 흐름도 개인적,내면적 세계의 천착이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왔다. 올해 신춘문예의 경우최근 10년동안 찾아볼 수없던 새로운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국 각 일간지 신춘문예에 여러차례 심사를 맡아온 시인 황동규 이근배씨, 소설가 김주영 김원일씨, 문학평론가 김주연씨가 신춘문예의 현주소와 또 다른 변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사회=올해도 일간지들의 신춘문예를 통해 새롭고 가능성있는 신인들이 대거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문학적 지향점이나 이슈가 혼미해진 탓인지,신인들의 작품이 다양성 측면에서는 많이 달라졌으나 반면 뚜렷한 주제나소재를 떠올리기보다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데로 눈을 돌리면서 문학이 왜소해지는 경향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만....
김주연=80년대 상황을 돌이켜보면 비록 정치,사회적으로 어려운 시대였지만문학하는 사람들에게는 창작의 모티브가 크게 열려있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신춘문예 응모작품에도 현실적 시대구도를 반영하며 변혁의무기로서의 문학을 지향하는 신인다운 패기가 있었고, 실험정신이 녹아있기도했습니다. 그러나 80년대말 세계적인 탈냉전구도와 해빙무드가 고개를 들면서 문학도 새로운 길을 더듬는등 그 변화의 조짐이 90년대로 이어졌습니다.그 결과는 우울한 시대적 체험만을 작품속에 담아내려는 고집이 조금씩 수그러들고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소재를 형상화하고 그 속에 개성있는 주제를 담으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국제화시대에 어울리는소재선택과 표현, 감각을 문학속에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그 예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같은 노력과는 다르게 문학적 성숙으로 이어질만큼 뚜렷한 성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소재선택의 어려움이라는 경우만해도생각만 변화하는 시대를 염두에 두었지 실제 창작모티브로 연결시키지 못하고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김원일=올해 여러 신문사의 신춘문예 응모작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만 한편씩 읽어 내려갈수록 실망감이 컸습니다. 요즘 신인들이 문장은 곧잘 만들어내지만 이야기를 짜는 방법이나 모호한 주제를 놓고 함께한 심사위원들과 우려의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신춘문예용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을 겨냥해서인지 문장이 아름답기는 하지만,사물을 들여다보는 끈기있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객관화된 문장을 통해 자신과 사물의 내면을 보는 비판력이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형식은 새롭지만 상투적인 표현이눈에 띄고 지나치게 개성에만 매달려, 체험의 바탕없이 우발적이고 생동감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이끌어나가는 점도 지적돼야 하리라 봅니다.사회=신춘문예에 대해서는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리기도 합니다만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등용문이라는 긍정론이 우세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60, 70년대처럼 20대 젊은층의 재부상이 괄목할 만했고, 80년대부터 이어져온 여성강세현상도 눈에 띄었는데....
이근배=신춘문예는 활자문화가 영상문화에 밀려나는 추세에서 인쇄매체의 대표격인 일간지들이 새해 원단에 문학에 활력을 불어넣고, 축포를 터트리면서일반독자들에게도 문학에 눈을 돌리게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그간 문학사에 크게 기여했지만 신춘문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겸한다는 점에서도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에는 대학생층의 의식이 정치,사회적 이슈로 쏠린 관계로 문학에의 관심이라는 여력을 허용하지 않은 시대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80년대말에서 90년대로 넘어오면서 공통된 지향점의 좌표상실이라 할까요, 개인화나 개별화 경향이 그 공백을 대신하면서 개성있는 삶의 지향이 두드러졌다고 할까요, 아무튼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젊은 세대들의 문학에의 회귀현상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숫자도 늘어났고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여성세의 여전한 강세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그 성숙도가 더해지는 보편적 현상으로 고착화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사회=올해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변화된 모습뿐아니라 실제 내용적 측면도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데요. 시의 경우는 어떤 특징을 보였습니까.황동규=우선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로 일상화를 들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체험과 사고를 바탕한 내면적 정서를 경쾌한 시어로 풀어내는 신인다운 개성이눈에 띄었습니다. 상투어나 빈 말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으면서 현실을 면밀히 관찰하는 투시력, 그 현실가운데를 스스로 지나가는 푹 젖은 체험, 그러면서도 거기에 이른바 시적 거리를 만들어놓는 객관화의 힘이 느껴졌습니다.때로는 너무나 아름답고 유연한 시적 진행이나 표현력이 별 것아닌 일상의모습들을 훈훈한 시적 공간으로 이끌어내는 수작들이 많았습니다. 반면 언어라는 질서속에서 도전으로 나타나는 문학의 본령에서 벗어나 장난스러운 치기가 보이거나, 어딘가 힘이 모자라거나 기성시와 닮아있는 점등은 진지하게 극복해야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삶을 시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하지않을까요.
김주영=소설의 경우 그동안 신춘문예의 단골메뉴였던 병영체험이나 운동권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소재상의 특징입니다. LA흑인폭동사태로 많은 피해를 입은 재미교포 사회의 현실을 소재로한 작품이 일과적인 현상인지는 모르지만 부쩍 늘어난 것도 특기할만한 현상이지요. 최근 기성문인들의 소설적 배경이 외국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는 추세에 비춰볼때 이를주시하고있는 신춘문예 응모작중에도 앞으로 이같은 경향이 이어질 것으로예측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소재도 소재지만 체험적인 글쓰기가 소설을 넉넉히 버텨나가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망각하지말고 깊이와 무게를 얹어주는저력있는 문장력과 이야기성을 배제한 구성법등에 신경을 기울인다면 90년대신춘문예의 앞날도 과히 어둡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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