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활하는 새 4

의혜가 돌아간 뒤, 그의 뇌리를 채우는 것이 뜻밖에도 선영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간은 자신의 뿌리를 거역하지 못한다는 논리로 원인을대야할까, 아니면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마지막 불꽃을 피워올린 탓이거나, 과거 삶의 한 기둥이었던 선영에 대한 애틋함처럼 자기 생에 대한 연민이 작용한 탓인지 모를 일이었다.아무튼 동유는 선영과의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선영이 그 추억의 자리에 반드시 있지않다 하더라도 그녀의 존재가 반드시 거기에 없다고 결코 부정할수 없는 그 시절의 유적들을.

아홉살 땐가. '마태의 집'에서 뛰쳐나와 역전으로 시장통으로 굴러다닐 때였다. 소란스럽던 하루가 잠들고 도시가 고요함에 몸을 맡기는 깊은 밤에는 고아원에 두고온 만돌린이 못견디게 그리웠었다. 선영과 함께 엿공장 고물창고에서 훔쳐온 그 만돌린. 그리고 음이 전혀 맞지 않는 고물악기를 뜯어 '스와니강'을 그럴싸하게 뽑아냈던 그밤. 일곱살배기 계집아이가 때묻은 겉옷을 벗자 드러난 가슴살이 어찌 그리 희던지, 그리고 콩알만하게 얹혀있던 젖꼭지는또 어떠하고.

그랬다. 그리운 것은 만돌린이 아니라 선영이었다. 쓸쓸한 밤에 육교위에 앉아 그 만돌린이라도 켜면 요술피리처럼 어디선가 선영이 나타날 것만 같았지않았던가.

'마태의 집'에서 도망쳐 나올때 선영이 건네준 손가락만한 계집아이 인형만을 부적처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다. 손으로 만지작거려 계집애 인형의머리나 코따위가 늘 반질반질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중국집에 '뽀이'로 들어갔을 때였는데, 어느날 그 인형을 주머니에서 찾을수 없었다. 어디에 흘렀는가 해서 식탁 밑을 살피다가 손님 짜장면 쟁반을 엎어버리기도 했는데, 그날 밤까지 틈만 나면 인형을 찾으러 구석구석을 뒤지다 끝내 주인 아저씨에게흠씬 두들겨맞고 쫓겨나게 되었다. 묘하게도 인형때문에 맞은 눈두덩이 시커멓게 멍들어 부어올랐지만 아주 유쾌하였다. 손을 주머니에 꽂고 밤길을 돌아다니며 얼마나 신나게 '스와니강'을 불러댔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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