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부활하는 새 7

동유는 베개를 이불 위로 던져버리고 멍하니 서있었다. 하나의 사물이 모든것을 뒤집어놓을수 있다는 사실이 아마 이때만큼 뚜렷하게 적용될때가 드물것이다. 책장앞에 놓여있는 단체사진이나 여자답게 느껴졌던 인형, 그리고 단정하게 쌓여있는 이불에서까지 돌연 역겨운 상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의혜에 못지않다며 아름답게 꾸며온 생각의 축조물들이, 말 그대로 돌위에돌 하나 쌓인 것 없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거지처럼 새카만 몸뚱아리와 잠자다 생리가 일어나자 아무렇게나 팬티에 닦아 거기에 쑤셔넣는 불결한 행동들이 마구 떠올랐다.

알고 보면 베개속에 있는 때묻은 팬티란 선영의 단순한 실수거나 이웃방 동료의 것일수도 있을 거야, 동유는 일어나는 역겨움을 간신한 변명으로 때우며방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조금뒤에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좀전 들어올때 야릇하게 웃어대던 옆방 계집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신발을 신고 나오는데, 그 옆방에 쿡쿡 웃음을 참지못하는 소리가들렸다. 동유는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야, 선영이 언니 오늘밤에 까북 죽는 거 아냐?"

"춘자처럼 말이지?"

"와, 나 진짜 그런 거 첨 봤어.(목소리가 바싹 낮아졌다) 새벽에 화장실에가다가 춘자언니방을 훔쳐봤는데-그 왜, 우리가 문밑으로 볼펜구멍 만한걸 뚫어놓았잖아-와, 멍멍이가 뒤에서 그거 하는거 있지? 또옥 같더라""어휴, 나도 낙엽지기 전에 머슴애 하나 물어야 하는데. 그건 그렇구. 오늘밤에 선영이 언니네 방을 어떻게 훔쳐보나 연구나 하자"

그런 말들을 듣자 선영에 대해 간신히 버티던 일종의 자기연민이 완전히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면 그 동안에 선영 몸에서 나는 불결한 냄새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향긋한 화장품냄새까지도 불결하고 천박함을지우려는 또 다른 불결함으로 느껴졌다. 비탈진 그 골목을 나설때는 두번 다시 오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해가며 물에 젖은 땅을 꾹꾹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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