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쪽 지자제(6)-빈약한 지방재정

만약 어떤 회사가 직원들에게 봉급을 주지못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악화돼있다면 어떻게 될까. 두말할 필요없이 파산하거나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직원들의 봉급조차 지급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수십년간 아무탈없이 꾸려나가고 있는 조직이 있다. 우리 지방자치단체들이 그렇다.전국 2백75개 자치단체중 지방세수입으로 소속공무원들의 인건비도 충당못하는 단체는 1백64개, 경북에서는 울릉.영양군등 17개단체가 자체재원만으로는인건비를 감당못한다.전국 자치단체중 약60%, 경북에서는 절반가량의 자치단체가 극빈 시.군으로'생활보호대상 자치단체'라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않으면조직유지마저 어려운 상태다. 이래서는 민선단체장을 선출해도 지방자치제정착은 공염불이다. 중앙정부에 구걸해야 먹고사는 처지에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건 빈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2공화국시절 실시된 자치제가 실패로 귀결된 가장 큰 원인은 낮은민도등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으나 자치단체들의 재원부족 때문이었다는 것이 지방자치제 연구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자치제를 실시하고 보니 몇개월씩 직원들의 봉급을 주지못하는 자치단체가 속출했던 것이다. 봉급지급이 밀리자 일부공무원들은 당시 읍.면의 주요세원인 농지세를 직접 받아 가로챘다.이때문에 빈약한 읍.면재정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지방자치는 '신기루'가 되고 말았다.

2공의 자치제 실패경험은 건전한 지방재정의 토대위에 지방자치가 싹을 틔울수 있다는 귀중한 교훈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현재 예산면에서 중앙정부의 간섭을 받지않고 독자적인 지방행정을 펼칠수 있는 자치단체는 대도시와재정자립도가 높은 몇몇 중소도시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존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지방재정상태가 이처럼 아사직전인데도 정부는 국세의 지방세 이전이나 교부세비율의 상향조정, 양여금 인상 등 지방재정의 확충방안은 외면하고 있다.단체장 선거뒤 중앙정부의 말을 듣지않는 단체장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비장의 무기'로 지방정부의 아킬레스건인 재원부족을 활용하겠다는 속셈인지도 모른다.

영국의 경우도 노동당 정권에 이어 보수당의 '대처' 정권이 들어선 뒤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예산통제가 강화됐다. 영국제2의 도시인 버밍햄 시의회의 정책분석과 전문위원 데이비드 하워씨는 "불과 3-4년전만해도 재정자립수준이 40%대였으나 보수당 정권이 지출세목까지 확정하는 식으로 예산통제를강화하는 바람에 지금은 그 절반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노동당집권때 활성화된 지방자치로 인해 지방정부들이 중앙정부의 말을 듣지않자 총액으로 주던 예산지급방식을 바꾸어 지출 세목을 일일이 정해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한편 지방정부 예산을 대폭 깎아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산통제를 통한 신중앙집권화 경향은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로각국의 지방정부에 대한 통제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신중앙집권화 경향이 세계적인 추세일지라도 이제 겨우 지방자치의 첫걸음을뗀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그러므로 시작해보지도 않고 비능률과 혼란을이유로 지방정부를 불신, 목을 죄어서는 안된다. 예산문제도 마찬가지다.지방정부가 기본적인 자체사업은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있게 부실한 지방재정에 물을 주어야 한다. 지방자치의 싹이 돋기도 전에 말라죽게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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